지난 6월 27일(목)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는 2017년에 한 성인용품 업체가 리얼돌의 통관을 거절한 인천세관을 상대로 낸 수입통관 보류처분취소 청구 소송에서 성인용품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2017년 9월 1심 재판부는 "물품이 전체적으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왜곡하고 있다."라는 이유로 세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난 1월 2심 재판부는 "개인의 은밀한 영역에의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라며 원심 판결을 뒤집었고, 지난 6월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이제 성인 여성의 신체를 그대로 본떠 만든 성인용품인 일명 '리얼돌'의 수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지난 7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성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리얼돌의 판매 및 수입을 금지해 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지난 8월 7일(수) 26만여 명의 동의를 받으며 종료돼 청와대의 공식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반면 앞선 청원에 반대하는 리얼돌 수입을 허용하자는 청원도 등장했다. 대법원이 내린 리얼돌 수입 합법화 판결로 인해 리얼돌을 둘러싼 각종 논란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리얼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우리학교 학우들과 페미니즘 동아리 '느릿느릿'의 생각을 들어보고, 리얼돌 판매업체의 입장도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실 확인과 더불어 리얼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리얼돌 논란, 그 시작은 어디부터?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특수 분장에 사용하기 위해 사람의 얼굴을 고급 실리콘으로 만든 것이 리얼돌의 시작이다. 기술은 점점 진화해 현재는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기능이 탑재돼 소리가 나는 인형까지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5년 변종 성행위 업소인 '인형체험방'이 등장한 뒤로 리얼돌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지만,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리얼돌에 대한 규제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리얼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디까지 왔을까
리얼돌에 대한 우리학교 학우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김광훈(건축·19)씨는 "리얼돌이라는 자위기구의 수입이 합법화된 것에 대해 그저 자위기구를 수입하는 것인데 문제될 것이 있냐는 태도는 위험하다. 리얼돌이 보편화되고 난 뒤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과학기술대학 학생 A씨는 "남성들은 리얼돌을 단순 성욕 해소용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여성들은 리얼돌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성범죄에 대해서 우려할 수 있고 이에 공감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사회과학대 학생 B씨는 "리얼돌을 사람이 아닌 성기구로 명확히 인식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 리얼돌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업체에서는 이러한 논란들에 대해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업체를 찾아가 직접 인터뷰를 해봤다.리얼돌 논란

1. 리얼돌은 성범죄 발생률 감소에 영향을 줄까?

인천 소재의 한 리얼돌 판매업체는 "리얼돌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발생률을 낮춰주는 데에 도움을 준다. 리얼돌이 합법성을 인정받아 양지의 문화가 된다면 특히나 소아성애자들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발생률을 낮춰줄 것이다."라며 리얼돌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반면 느릿느릿은 "리얼돌이 성범죄 발생률을 낮춰준다는 주장은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라며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한국에서 리얼돌이 합법화되는 것은 성범죄에 대한 심리적 한계선을 낮춰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리얼돌은 성범죄 발생률을 낮춰줄까? 우리나라에 리얼돌이 상륙한 2005년 이래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비율은 감소한 적이 없었다. 특히 리얼돌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증가하며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10년에는 어땠을까. 대검찰청이 2011년 발표한 범죄분석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도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한 성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로봇 윤리 연구학자인 캐슬린 리처드슨 교수는 "성범죄를 감소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섹스돌을 사용할 게 아니라 학대받은 여성들을 돕는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전혀 다른 지식과 해결책을 갖고 있을 것이다."(<오마이뉴스> 19.08.12) 라며 리얼돌은 성범죄를 감소시키는 데에 큰 영향이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과 전문의는 "남녀에 관계없이 일부 성욕을 조절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 치료목적으로 리얼돌을 사용할 경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19.08.06)라고 말했다.
 

 


2. 리얼돌은 장애인의 성생활을 돕는가?
지난 판결 당시 재판부는 성기구가 성기능 장애를 가진 경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리시대 혐오를 읽다'의 공동저자 김홍미리 연구활동가는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남성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리얼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남성 중증 장애인의 성욕 해소를 위해 꼭 여성 신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성에게 남성의 욕구를 풀어줄 의무가 없다."(<민중의소리> 19.08.06)라고 말했다.
리얼돌 판매업체는 "리얼돌은 성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인들이나 자폐아들의 성생활을 돕고 있다. 성도우미라는 직업이 사라진 뒤로 성욕을 해소할 길이 없던 이들이 리얼돌이 등장하면서 해소할 창구가 생긴 격이다. 만일 해소할 창구가 없다면 오히려 욕구를 참지 못해 범죄를 통해 성욕을 해결하려 하지 않겠는가?"라며 반문했다.
장애인의 성 상담을 돕는 푸른 아우성의 대표 조윤숙씨는 "성매매 등의 소지가 있는 성도우미에 대해선 반대하지만 리얼돌은 사람이 아닌 인형인 만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전한 성생활을 위한 리얼돌 수입 허가에 대해서는 찬성한다. 하지만 장애인을 위해 리얼돌을 수입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라고 생각해 유감스럽다."(<한겨레> 19.07.31)라고 밝혔다.

 


3. 리얼돌 합법화 판결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가?
지난 6월 대법원은 "리얼돌을 제작하고 구매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은밀한 성생활이기에 국가가 개입할 법적인 논리성을 찾지 못했다."라며 리얼돌 수입 업체의 승소를 인정했고 리얼돌 수입은 합법화됐다.
이에 대해 느릿느릿은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남성의 성욕을 사회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불필요한 의무감이 발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얼돌은 남성의 성욕 해소를 돕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정복 욕구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리얼돌 판매업체는 "리얼돌이 가지는 순기능은 무시할 수 없다. 대법원도 리얼돌의 그런 취지에 공감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라며 대법원의 판결에 공감했다. 또한 "합법화 이전에는 아예 리얼돌과 관련한 법이 없었던 상황이라 항상 음지에서 판매했는데 이제는 합법화가 돼서 좀 더 양지의 문화로 리얼돌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합법화 판결 이후에 구매나 창업 문의도 많아졌다."라며 문화로 정착될 리얼돌에 대한 기대감과 리얼돌의 높아진 수익성을 강조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로 리얼돌의 수입이 합법화되면서 리얼돌이 가져올 수 있는 여성의 존엄성 훼손과 성 상품화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4.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로도 리얼돌을 만들 수 있다?
리얼돌이 합법화된 이후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바로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을 본떠서 리얼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언제 자신의 얼굴이 리얼돌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과연 실제로 가능한 일일까. 업체는 "제작 비용이 높아져서 소비자 가격이 800만 원 정도로 나온다. 과연 이렇게 비싼 가격의 인형을 사려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창업 문의를 하거나 구매 문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전 여자친구 사진을 들고 온 사람이 있었는데 우리가 가장 닮은 인형을 추천해줬더니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이 합성된 리얼돌관련 문의가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느릿느릿은 "이런 상황 자체가 성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인물처럼 상품화할 수 있다는 것은 리얼돌이 성욕 해소 도구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정복과 가해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라며 비판했다.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는 불법 촬영에 대한 인식이나 처벌기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연예인, 심지어는 일반인의 얼굴까지도 합성이 가능한 수준이 된다면 불법 촬영과 비슷한 유형들의 범죄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내비쳤다. 누군가의 얼굴과 닮은 리얼돌을 만드는 것이 그 사람의 인권을 훼손할지 모른다는 경각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5. 136센티미터 리얼돌, 소아성애와 관련이 없을까?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136센티미터의 리얼돌. 실제 판매자들에게 문의하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이를 두고 '아동의 성도 상품화의 대상이 됐다'며 많은 이들이 비판했다.
판매업체는 이에 대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동성에 문제가 있어서 작은 인형을 선호한다. 어르신들도 큰 인형은 다루기 힘드니까 성인을 축소시켜 놓은 작은 키 버전을 만든 것이다. 오히려 소아성애자들은 가슴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요구사항은 들어주지 않는다."라며 작은 리얼돌이 소아성애와는 관련이 없고 이동에 있어 더욱 편리하도록 키를 작게 만든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느릿느릿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이동성을 위해 작게 만든다는 것은 핑계일 뿐, 작은 리얼돌은 어린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했다.
리얼돌을 합법화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도 아동의 성을 상품화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처벌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는 아동형상의 리얼돌과 섹스로봇을 금지하는 '크리퍼 법'이 있고, 노르웨이와 캐나다에서는 아동을 닮은 리얼돌을 구매, 소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리얼돌의 수입을 합법화한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리얼돌에 대한 규제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았던 아동을 형상화한 리얼돌 논란에 대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리얼돌, 부작용에 제대로 대비하자
지난 8월 8일 '아동 리얼돌 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인화 국회의원은 "사법부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해 행정부를 상대로 국민이 의견을 제시한 사안이므로 즉각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예측된다. 대법원의 판결을 행정부가 좌우하는 것은 삼권분립에도 어긋난다."라며 리얼돌 국민청원이 즉각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국회에서는 법안을 통해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리얼돌 수입과 유통이 초래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리얼돌이 야기할 수 있는 우려의 목소리를 입법 과정에서 잘 전달하겠다. 최근 발의한 '아동 리얼돌 금지법'의 발의도 이러한 우려에 반응한 입법 노력이었다. 아동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법안들과의 병합심사를 통해 성인 리얼돌에 대한 부분까지 확대해서 국민의 인권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고민하고 논의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의 합법화 결정으로 인해 리얼돌 문제는 더 이상 회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리얼돌이 점차 실제 사람의 형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동안에 리얼돌과 관련해 제기됐던 논란들은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이 됐다. 정 의원은 "리얼돌이 함의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리얼돌 논란이 유발하는 여성들의 일상적인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개인의 성욕에 관한 부분이라는 이유로 리얼돌 수입을 합법화한 대법원의 취지가 국민 대다수의 법 감정에 부합하는 것인지, 우리가 그동안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지배 욕구까지 성욕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해왔던 것은 아닌지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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