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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밭골]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기사입력 2017-05-29 14:56 기사수정 2017-05-29 14:56
   
 

제19대 대선은 역대 최다 후보자가 등록해 총 14명이 출마했다. 원내 5당의 주요 대선후보를 제외한 군소후보 9명의 출마 사연은 저마다 다양했다. 그중 필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 내용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지만 “국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에 출마했다는 것이다. 이런 군소후보들을 보고 “기탁금 3억원이 아깝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리고 기탁금 마련 이후 선거운동 비용에 부담감을 느껴 사퇴한 후보도 있고, 홍보물을 흑백 1장으로 겨우 만든 후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나름대로의 사명감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리려 노력했다. 그 이야기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상관없이 그들의 도전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그런 제언을 할 만한 곳이 얼마나 없었기에 그들이 기탁금 3억원을 내면서까지 출마한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행보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지난 5월 13일(토) 오전 김정숙 여사는 홍은동 사저에서 청와대 관저로 이사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시민이 억울함을 호소했고, 김 여사는 그 민원인의 손을 잡고 직접 사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얼마 후 사저에서 나온 민원인은 “박근혜 정부 때도 같은 민원을 계속 넣었지만, 경찰이 제재했다”며 “이번에 들어줬으니 앞으로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고 한다. 김 여사가 민원인에게 어떤 해결책을 제시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도 민원인은 일이 해결된 것처럼 고마워했다.
흔히 상담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내담자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을 내려 주거나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경청을 통해 해결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입은 하나지만, 귀는 두 개이듯”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툭 터놓고 이야기했더니 조언, 걱정이랍시고 훈수를 두거나 더욱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듯, 말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은 주의를 요한다. 이와 달리 듣기는 어느 정도의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작은 배려로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데 이를 굳이 마다할 까닭이 있을까.
과거보다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소통할 수단 또한 다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마땅한 곳이 없어 외로워한다. 그 해답으로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싶다. 누군가 이야기를 걸어올 때, ‘잘 듣고 있다’는 반응을 제외하고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만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때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싶고, 본인의 생각으로 애정 어린 조언을 해 주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외로운 삶 속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편’이라는 위로와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군소후보들이 낸 ‘기탁금 3억원’의 가치를 우리가 실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곧 사회의 갈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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