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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시평]뒤돌아보는 25년의 북악(北岳)
 
기사입력 2017-05-29 14:57 기사수정 2017-05-29 14:57
   
 

북악 교정에 첫걸음을 했을 때가 1992년 이른 봄이었으니 벌써 25년이 지났다. 지난 사반세기의 시간을 돌아본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변한 것이 많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좋은 일 혹은 궂은 일의 중심에 서기도 주변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변하고 변하지 않은 것들을 뒤로하고 이제 8월이면 북악을 떠난다. 북악을 떠나는 마지막 시점에서 지난 25년의 우리 사회와 국민대학교를 되돌아본다.
결코 짧지 않은 지난 25년의 대한민국을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동안 5명의 대통령이 재임했고 최근에 6번째 대통령이 선출됐다. 어떤 대통령은 우리를 굴욕의 재정위기에 빠지도록 했고 어떤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나 북한과의 검은 돈거래도 불사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대통령은 탄핵과 파면에 이어 재판에 회부됐는가 하면 또 다른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대통령의 역량이 부족하고 제도가 대통령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의 정치 환경, 구조와 행태가 매우 후진적이기 때문이었다. 왕정 시대의 당쟁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평가되는 정치행태와 정치제도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큰 숙제이다. 그런가 하면 그동안 무수한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금도 처참했던 세월호 사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재지변이 아닌 사고 공화국에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한 일들이 무수히 발생했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하루도 편안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2002년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우리가 당당히 4강에 포함된 것은 우리 모두를 하나의 ‘대한민국’으로 묶어줬다. 경제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OECD 회원국이 된 것도 국가의 위상을 높여줬다. 역동적인 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의 확산은 세계의 중심으로서 대한민국을 우뚝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가 하면 동족상잔의 전쟁과 뿌리 깊은 빈곤으로 세계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의 개발도상국에게 우리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재원을 부담하는 지원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시간과 역량을 나누고 있는 큰 나라가 된 것이다. ‘붉은 악마’로 호칭되는 대한민국이 당당하고 자랑스럽다.
지난 25년의 국민대학교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대학의 규모나 구성에서 현격한 성장을 했다. 지금의 국제관 자리는 계단과 언덕이었다. 76계단으로 알려졌던 경사진 계단과 지금의 운동장이 연결돼 있었다. 학생회관의 자리도 운동장의 일부였다. 예술관과 7호관의 자리에는 교직원 테니스장과 야외 음악당이 있었고 기숙사의 자리는 언덕이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 도서관이 개관됐고 용두리 상도 건립됐다. 그런가 하면 북악관, 조형관, 본부관, 법학관, 공과대학, 그리고 자연과학관은 소위 말하는 리모델링을 거쳐 새로운 건물이 됐다. 지하 3층의 대규모 주차장은 우리학교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차 없는 캠퍼스’로 만들었다. 돌이켜 생각건대, 유일하게 예전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은 실내체육관이고 공대 앞의 테니스장이 그대로이다. 완전하게 없어진 것은 교문이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학교의 입구에 교문이 있었다. 미관상의 이유인지 아니면 추세를 반영해서인지는 몰라도 교문은 철거됐고 지금의 입구로 변경됐다. 아쉽지만 시원하다는 느낌도 든다. 건물은 아니지만, 교표도 바뀌었다. 한자로 대학이라고 표시됐던 전통적인 모습은 지금의 동그라미의 형태로 바뀌었다. 세상의 중심이 되자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 대학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빠진 것도 있을 터이지만 언급된 것만 하더라고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예술대학이 신설됐다. 조형대학이 추구하는 실용 예술과 예술대학의 순수 예술이 어우러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고 실제 우리학교의 예술 영역은 독보적인 수준에 이르고 있다. 재학생들의 숫자도 현격히 증가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유능한 공무원의 양성에 목적을 두고 야간대학으로 시작했던 우리학교의 야간 학부가 주간으로 전환되는 변화도 있었다. 이제는 재학생 2만명이 넘는 대규모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증가한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교직원의 숫자도 현격히 증가했다. 지금의 숫자를 25년 전에 비교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때는 교직원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을 정도로 가족적(?)이었으나 이제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 큰 대학으로 향하는 길에는 숫자의 힘에 더해 열정의 힘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25년 동안 25번의 입학식과 24번의 졸업식이 있었다. 매년 새로운 학생들이 북악을 찾고 그만큼의 학생들이 사회로 나간 것이다. 일전에 행정학과 졸업생들의 입학 20주년 모임에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경험이 있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이른 졸업생들이 가족과 함께 참석한 모습을 봤다. 시간은 이렇게 그들을 변화시킨다. 혼자였던 그들이 아들과 딸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은 참으로 좋았다. 시간이 그들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중년의 나이에 북악의 교정에 첫걸음을 디뎠던 모습은 이제 백발의 노년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북악 교정의 향나무는 그때 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그런 것처럼, 입학 20주년 행사에 참석한 중년의 졸업생들이 한순간에 노년의 나와 함께 20년 전의 강의실에 돌아가 있는 것이다. 북악 교정을 거쳐 간 모두는 항상 북악인으로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없이 웅변한다. 그들이 학업을 마치고 북악 교정을 떠난 것처럼 25년의 재직을 마지막으로 북악을 떠난다. 25번째 졸업식을 지켜볼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북악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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