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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김영란법이 준 선물
 
기사입력 2017-05-29 14:59 기사수정 2017-05-29 14:59
   
 

2017년 봄은 다른 해 봄과 많이 다르다. 골프로부터 ‘해방’됐다는 점에서다. 예년 이맘때면 봄철 주말 스케줄이 골프로 꽤 빠듯하게 채워졌는데 올해는 다른 일정이 빼곡하다.
김영란법 덕분이다. 비로소 법의 도움을 얻고서야 “골프를 쳐야 한다”라는 구속과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행 전에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 ‘영업이 가능하겠느냐. 새로운 사람 사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우리 사회 전체가 괜한 감정소비를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파심이 주범이었다.
‘골프 해방’을 놓고 혹자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여러분들에게 미안해하지 않고도 시간과 자유를 얻어 기쁘다고 느낀다. 아쉬운 마음이 왜 없겠느냐마는, 홀가분한 기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대신에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자전거 타기와 걷기, 등산 등 취미가 다양해졌다. 지난 5월 초 긴 연휴가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골프 외에도 쉬는 날에 할 수 있다는 게 많다는 점에 새삼 놀라고 있다.
4월 초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에는 섬진강 400리 길(160㎞)을 자전거로 달렸다. 정읍, 순창, 곡성, 구례, 하동, 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강은 굽이굽이 각기 다른 수채화를 선물해 줬다. 화계장터와 광양 청매실농원은 지친 라이너들에게 멋진 쉼터를 제공해 줬으며, 벚꽃 필 때만 맛볼 수 있다는 벚굴(강굴)은 에너자이저가 되기에 충분했다.
3월 어느 주말엔 6호선 태릉 화랑대역에서 5호선 광나루역까지 걸었다. 서울둘레길 2코스인 이 구간은 천변과 도심, 등산로가 병행된 14㎞ 3시간 30분 거리다. 화랑대역 서울의료원 양원역 등으로 이어지는 천변과 도시를 지나 망우리 고개에서 공동묘지로 접어들면 수많은 선열을 만날 수 있다.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거쳐 광나루역에 도착해도 마치 금방 산책을 마친 양 몸이 가뿐하다.
북한산 둘레길은 또 어떤가. 은평뉴타운 인근 진관생태다리에서 정릉으로 이어지는 8, 7, 6, 5구간 16㎞는 호젓하기 그지없다. 중간에 구기터널과 북악터널이라는 복병이 있어 거세게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이지만 힘들면 막걸리 한 잔, 전통차 한 잔을 할 수 있는 여유 넘치는 길이다. 고급 단독주택 전시장인 평창동을 오롯이 관람할 수 있는 점은 덤이다. 모교의 가장 높은 건물인 2호관(현 북악관)을 보며 대학 생활을 되돌아보는 추억의 등산로이기도 하다.
서울에는 명산이 특히 많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우면산, 청계산, 관악산 등 익히 알려진 큰 산들 말고도 30분만 벗어나면 야트막한 산들이 반긴다. 검단산(하남), 예봉산(팔당), 불곡산(양주), 광교산(수원), 백운산(의왕) 등이 그곳이다. 어디를 가나 총 3∼4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등산로와 이정표가 잘 정비돼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물길이 있고 물길 곁에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닦여 있다. 제주 올레길을 본뜬 길이름도 지역마다 특색있고 다양하다. 바우길(강릉), 해파랑길(동해), 바다부채길(정동진), 아라메길(서산), 여강길(여주), 늠내길(시흥), 마실길(변산), 볼랫길(양평)……. 하나같이 정겨운 이름들이다. 곳곳에 간단한 체육시설들도 잘 준비돼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점은 지자체장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이렇게 달리고 오르고 걷다 보면 운동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마니아’들은 다들 알겠지만, 운동의 즐거움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오르고 달리고 걸으면 여러 시간 편안함, 상쾌함 그리고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온전히 평화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도 있다.
골프도 운동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등산이나 걷기와는 전혀 다른 운동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게 마련이고, 남보다 잘하고 싶은 경쟁심이 발동하기 마련이다. ‘영업’이나 ‘접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관계’에서 오는 중압감으로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한다. 요번에는 이렇게 해야겠다고 머리도 굴려야 한다. 그냥 걷거나 달리는 운동은 그런 작은 스트레스조차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잡념은 떠오르는 대로 놓아두고, 그러다 보면 정말 좋은 생각도 떠오른다. 김영란법이 올봄 나에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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