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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고전의 숲에서 ‘나’를 만나라
 
기사입력 2017-05-29 15:00 기사수정 2017-05-29 15:00
   
 
지난 3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서적 구매비용은 1만 5335원으로 전년(1만 6623원) 대비 7.7% 감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지난해 신간 단행본의 평균 정가인 1만 8108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구당 한 달에 책 한 권도 구매하지 않은 셈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책으로부터 멀어져 버렸을까.
흔히 경제적 불황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도서 구매의 위축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듯하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책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는 오로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까닭에 다양한 책을 지속해서 읽는 학습이나 훈련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학은 또 어떤가.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한 대학에서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않고 인간과 역사와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책을 읽어 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학 졸업 후의 독서 환경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시간적 여유에서부터 심리적 여유에 이르기까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조건들이 하나씩 줄어들고, 급기야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돈밖에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현실 인식이라 비판할 수도 있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냐며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다. 책을 읽지 않고도 인간은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간적으로 낫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것마저 쉽지 않다는 항변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한 번쯤은 책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책은, 특히 시간의 시련을 통과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고전은, 동서고금의 사상이 응축된 인류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이러한 자산의 토대 위에 인류는 문명을 이룩해 왔고, 삶을 영위해 왔으며, 과거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상상해 왔다. 지금 여기의 ‘나’는 수많은 다른 요소들의 화학적 구성물이며, 책은 정신적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내면화하여 더욱 풍성한 ‘나’를 가꾸는 작업과 맞먹는다.
거울이 있어야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듯 ‘나’가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무엇’을 거쳐야 한다. 타자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주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타자를 만나기 전에는 내 안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 발견하기 어렵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는 동시에 나는 또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직접 깊이 있게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간접적으로나마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는 매개물이다. 다양한 삶이라 했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가 쌓아온 자연과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라 해야 옳을 터이다. 그리고 그 통찰과 이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미처 만나지 못했던 여러 모습의 ‘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만큼 ‘나’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곧 여름방학이다. 각자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테지만, 고전의 숲을 걸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낼 방법일 것이다. 그 숲에서 우리는 갈등과 투쟁을 거쳐 낙원에 이르는 인간의 드라마를 발견할 것이며, 어느 순간 그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는 ‘나’를 만날 것이다. 우주, 신화, 역사, 문학 그리고 철학이 숨 쉬는 그 숲에서 빼앗긴 독서 능력을 되찾고 나아가 ‘나’ 안에 숨어 있던 다양한 가능성을 찾을 것이다. 고독을 동무 삼아 고전의 숲을 걷고 난 후 우리는 더 넓고 더 깊은 ‘나’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준비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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