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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96년생 김유진
 
기사입력 2017-08-28 13:25 기사수정 2017-08-28 13:25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성씨 ‘김’, 가장 흔한 20대 여자 이름 ‘유진’. 현재 대학교 2~3학년에 재학 중인 대다수 여학생들은 1996년생. 앞서 말한 세 개의 ‘흔한’ 조합으로 탄생한 이번 기자의 눈 제목은 ‘96년생 김유진’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 제목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작인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따온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 여성들이 늘 겪어 온 보편적인 일상을 1982년생 김지영 씨의 인생으로 재현해냈다. 대한민국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흔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이라서’ 겪어야 했던 여성 혐오적 폭력과 억압이 담겨 있다.
이제, 어딘가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96년생 김유진 씨의 삶을 들여다 보자. 유진 씨는 출근길 교통 혼잡 시간을 피해 등교하려 일찍 눈을 뜬다. 사람이 많은 틈을 타 몸을 더듬는 이상한 아저씨들이 있어서다. 현관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으나 이번 것은 그냥 지나쳐 보낸다. 아무리 이웃사촌이라지만 모르는 사람과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기 꺼림칙해서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갔을 땐 꼭 여기저기 살펴보곤 한다. 화장실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설치돼 있는 ‘몰카’ 범죄가 기승이라는 뉴스를 보고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하교 후,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다 보니 통금시간이 가까워졌다. 일찍 귀가하라는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메시지를 받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어디선가 흘긋거리며 몸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들이 불쾌하다. 그새 많이 어두워진 밤거리는 혹시나 뒤에서 누가 따라올까 두려운 마음을 부추겨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이 이야기는 김유진 씨의 이름을 빌려 필자가 지어낸 글이지만, 이 글을 읽고 있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현실이기도 하다. 이렇게 집, 학교, 길거리, 화장실,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안고 하루를 살아가지만, 이마저도 너무 익숙해져 무뎌진 채로 나아지지 않은 내일을 맞이한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대한민국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었다. 사회 각층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수많은 여성 인권 운동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성들은 ‘왁싱샵 살인사건’으로 또다시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여전히 ‘세상이 흉흉하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말만 돌아올 뿐인 현실 속에서 과연 아직도 대한민국이 성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적어도 ‘여성’이기 때문에 화장실을 갈 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밤거리를 거닐 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정상적인’ 일상을 누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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