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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취재]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국민대사전
 
기사입력 2017-09-23 10:47 기사수정 2017-09-23 10:47
   
 


71년의 역사와 전통이 흐르는 국민대학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학으로 시작했던 우리학교가 서울의 명문대학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71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학교는 다양한 변화를 겪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신입생들도, 재학생들도 익숙해진 우리학교에 아직 학생들이 모르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 학생들에게 학교 속 숨겨진 재미요소들을 소개하기 위해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국민대 사전’을 준비해 봤다. 우리가 준비한 퀴즈들을 풀어 보며, 국민대학교 곳곳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알아보자.

● 우리학교에는 서울권 대학 중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있다?

그렇다. 우리학교의 대표건물인 북악관은 해발 196m로, 서울에 있는 대학 건물 중 가장 높다. 그래서 북악관의 명물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면 서울의 모든 지역을 구경할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잠실 제2롯데월드 건물까지 보이니, 공부하다 지친 심신을 위로할 겸 투명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을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또한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고백을 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고 한다. 고백을 앞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풍경을 구경해 보길 추천한다.

● 국민대학교에는 박물관이 있다?
국민대학교에는 박물관이 있다. 성곡도서관 5층에 위치한 우리학교 박물관은 대학의 고유기능인 학문적 전문성과 교육적 보편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됐다. 1973년도부터 개관한 국민대 박물관에는 총 1만 5천여종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또한 일년에 두번씩 특별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도 만남 특별전에서 ▲글씨 ▲그림 ▲생활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선인들의 정신을 만나 보는 행사가 진행됐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학생들은 다음 특별전에 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공학관 맞은편에는 야외박물관이 있다. 나무들과 어우러져 있는 돌상들의 모습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야외박물관임을 모르고 흡연을 하곤 한다. 엄연히 전시해 놓은 작품이니, 이제부터라도 지정된 흡연 부스에서 흡연하도록 하자.

● 우리학교만의 특별한 맛집은?
우선 국민대 맛집 하면 국민대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복지관 빵집인 플레이스엔이 있다. 플레이스엔은 항상 갓 지은 따끈따끈한 빵을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학생들에게는 ▲연유바게트 ▲감자바게트 ▲베이컨갈릭바게트 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매번 새로운 빵을 연구하는 플레이스엔의 사장님은 우리학교 동문으로, 학생들에게 맛있고 새로운 빵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또한 아침을 못 먹은 학생들을 위해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함께 사면 500원을 할인해 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다음으로 법학관 5층에 위치한 청향이 있다. 청향에서는 맛 좋은 요리를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먹을 수 있다. 비교적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질 좋은 요리를 학교 안에서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뭔가 특별한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청향에서 식사해 보길 권한다.

● 국민대학교는 원래 정릉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 원래 국민대학교는 창성동에 있었다. 우리학교는 해방 이후 최초의 사립대학이었으나 재단의 부실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성곡(省谷) 김성곤 선생이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종합대학을 설립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먼저 성곡 선생은 종합대 요건이었던 자연과학계열을 신설하기 위해 1965년 ▲중앙농민학교를 인수·합병 ▲대학 정원령에 따라 4개 학과를 13개 학과로 증진 ▲학부제로 개편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그러나 창성동 캠퍼스는 1200여평으로 이 모든 것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했다. 또한 주변에 주택가와 청와대 입구, 경복궁 등의 건물이 있어 더 이상 교지를 확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성곡 선생은 “백년대계로 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철학으로 새로운 캠퍼스를 정릉으로 선정하게 됐다. 정릉캠퍼스는 4만 4천여 평으로 창성동 캠퍼스와 비교했을 때 매우 넓은 교지이다. 이후 우리학교는 꾸준히 규모를 확충해 나가며 1981년 3월에 종합대학으로 승격할 수 있었다.

● 우리학교에는 원래 묘가 있었다?
놀랍지만 사실이다. 그 묘의 주인공은 바로 성곡(省谷) 김성곤 선생이다. 그는 1959년 우리학교를 인수할 때 굉장한 뿌듯함과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실제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대학교에 다니는 제군을 대할 때 나는 과거의 나를 대하는 것 같이 느끼곤 한다.”라고 밝힐 정도였다(<국민대학보>, 1968년 5월 20일자, 「국민대학과 나」).
1975년, 우리학교를 아끼던 그가 갑작스럽게 타계하자, 그의 가족들은 고인이 생전에 우리학교를 많이 아꼈던 점을 감안해 가족장으로 우리학교 뒷산에 안장했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이 교내에 무덤이 있는 것에 반대해 1984년, 성곡의 묘는 강원도 평창군으로 이장됐다. 그리고 성곡동산에 있던 묏자리는 지금과 같은 휴식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그 뒷산의 이름이 ‘성곡동산’이 된 것이다.

● 우리학교 뒤편에 절이 있다?
공부하러 성곡 도서관에 가면, 근처에 낯선 이름을 가진 목적지의 이정표가 보인다. 혹시 ‘삼봉정사’라는 이름을 들어 봤는가? 성곡 도서관 뒤편에 있는 오솔길을 이정표를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면 고즈넉한 느낌의 절이 등장한다. 원래 우리학교가 본부관과 북악관 규모의 작은 캠퍼스로 머물 무렵에는 삼봉정사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캠퍼스 크기를 확장하면서 삼봉정사로 진입하는 길이 불편해졌다. 자칫하면 법적인 분쟁으로 빚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삼봉정사 측에서 먼저 “학교는 학생들이 지식과 교양을 쌓는 곳”이라며 배려를 해 줬다. 이에 대해 우리학교는 삼봉정사로 통하는 별도의 통로를 마련해 주기로 하면서 아름답게 사건이 마무리 됐다. 그래서 삼봉정사가 우리학교와 경계를 맞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된 것이다.
삼봉정사는 우리학교와 가깝지만 주변 환경은 완벽에 가까운 쾌적함을 자랑한다. 공기가 깨끗한 것은 물론이고,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자가 직접 삼봉정사 입구에서 소음도를 측정한 결과 25dB이 나왔다. 평균적으로 60dB이 생활소음이고 80dB이 지하철 소음에 가깝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삼봉정사에서는 자연의 소리만 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온갖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있다면, 삼봉정사로 발걸음을 향해 보는 것은 어떨까.

● 2014년 이전 배밭골에서는 석탄을 땠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인 서울에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던 곳이 있었다면,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이다. 심지어 우리학교 바로 앞 ‘지하세계’의 옛 이야기다.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지하세계’로 불리는 ‘배밭골’은 2014년 이전까지 도시가스 공급이 안 됐다. 따라서 배밭골 주민들이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석유나 석탄을 이용해야 했다.
배밭골이 도시가스 공급을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도시가스 공급까지 무려 6년의 시간이나 걸린 것인데, 이토록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배밭골 내에 있는 하수박스 등 공사에 지장을 주는 시설물들이 많았고 ▲내부순환 고가도로 및 경사면 인력 굴착 작업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사유지 14개 구간에 대한 토지사용 동의서가 필요한 문제 등 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배밭골의 사유지 주인 중에는 우리학교도 포함됐는데, 우리학교가 가지고 있는 소유지를 통과하는 도시가스 공급관 매설 공사를 허가함으로써 배밭골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또한 구 관계자들, 주민대표 등이 활발히 논의한 끝에 2014년 8월 25일부로 배밭골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도록 최종 합의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 난방을 걱정해야 했던 배밭골 주민들의 오랜 고민거리는 이제 정말 ‘옛 이야기’가 됐다.

올해로 개교 71주년을 맞이한 우리학교. 71년의 세월만큼이나 많은 사건이 있었다. ‘위의 이야기들 모두 다 알고 있는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라는 궁금증으로 이번 코너를 준비해봤다. 모두 맞췄다면 우리학교에 대해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고 자처해도 좋다. 그러나 하나도 몰랐다고 해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학교는 지나온 역사보다 다가올 역사가 더 많이 남았고, 그 다가올 역사의 주인공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이시래·최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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