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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기 밖에서 함께 하기
 
기사입력 2017-11-13 10:56 기사수정 2017-11-16 16:43
   
 
더위와 무기력에 허덕이던 8월,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또 무슨 광고인가 하고 열어 보는데 ‘국민대신문’이란 단어가 눈에 띄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미안함, 뒤이어 찾아오는 반가움, 그리고 한발 늦은 의문. ‘왜 나에게 원고를 요청했을까? 다른 선배님들도 많은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절이라는 단순하고 간편한 선택지가 머릿속에 아예 떠오르지 않았다. 딱히 떠오르는 주제도, 할 말도 없는 상황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대응이란 그저 ‘제가 요즘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10월쯤에 참여해도 될까요?’라는 미루기 신공을 발휘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편집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고 요청에 응해 줘 고맙다며 11월로 예정된 원고 마감일을 확정해 버렸다.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문제는 항상 정신이 없다는 진실이었다. 집수리로 8월을 보내고, 해외에서 9월을 지내고,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10월을 태워 버리고 나니 이번엔 카톡이 왔다. ‘원고청탁서’가 첨부돼 있었다. 원고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3개월 전의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11월이 되면 뭐가 다를 줄 알았나 보다. 그러자 애초에 내가 왜 거절을 생각하지 못했나 하는 의문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국민대신문’, 그 단어 때문이었다. 피할 수도, 지울 수도 없는 필자의 대학 시절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 말이다.
막차가 끊기기 직전까지 기사를 쓰고 밥 먹듯이 철야를 했다. 이미 일을 끝낸 동료들도 집에 가지 않았다. 벌건 눈으로 자리를 지키며 뭐 도와줄 거 없냐고 어슬렁거리다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커피 같은 주전부리를 한가득 사 오곤 했다. 칠판에 빼곡하게 적힌 기사 목록이 한 줄 한 줄 지워질 때마다 신선한 공기와 함께 담배 연기도 따라 들어왔다. 3년 동안 격주로 이런 날이 반복됐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대학 시절 학보사 기사 마감, 그리고 조판 날 풍경. 문을 열 때마다 콧속으로 파고들던 나무 썩는 냄새마저, 그 시절과 관련된 것이라면 마냥 향기롭게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에서, 다시는 학보사 때처럼 신나게 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사를 쓰더라도 잠은 꼭 집에서 1시간이라도 자려고 노력했다. 동료들은 자기 일이 끝나면 눈치를 살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다 때려치울까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막상 그 후의 일이 막막해 숨을 깊게 들이켰다. 담배 연기가 텁텁하게 입안에 남았다. 커피인 줄 알고 나눠 마신 디자이너의 컵엔 술이 담겨 있었고, 화장실에서 회의실에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험담을 했다.
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심지어 월급에 4대 보험에 야근 식대에 새벽 택시비까지 보장되는데 나는 뭐가 그리 억울했을까. 학보사 때보다 실력이 좋으면 좋았지 결코 뒤처지지 않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데 나는 왜 그리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대학 시절 필자는 딱히 어떤 보상을 바라면서 일을 했던 게 아니었다. 다음 신문을 기획하고, 기삿거리를 찾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동료들과의 믿음과 우정 같은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보상보다 더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보니 금액으로 측정해 보지 않았고 측정할 필요도 없던 나의 노력과 열정이 ‘월급’이라는 숫자로 따박따박 계산되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이 고생하는 것 같은데 누구는 얼마를 받고 누구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불편한 현실이 눈앞에서 되풀이됐다. 과정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결과와 보상만이 남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기자는 기획자가 됐고 때로는 활동가였다가 다시 직장에 얽매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베이징으로, 헬싱키로, 여수로 하는 일에 따라 공간도 사람도 바뀌었다. 그때마다 셈법도 변했다. 현지 적응력과 언어능력이 추가되기도 하고, 다 필요 없이 눈치와 사회성만 있으면 중간은 가는 조직도 있었다. 계산은 언제나 어긋났다.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계산기에 밀어 넣으려는 그 셈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무언가 계산되고 있다는 눈속임에 빠져 스스로를 계산기 속에 가둬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고 나니 계산기 밖의 세상이 보였다. 관계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도 언제나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들. 보상과 상관없이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결과와 보상 사이에는 계산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국민대신문사’가 있었다. 그래서 거절할 수 없었던 거였다. 결과와 관계없이 과정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곳. 나에게 득이 되든 실이 되든 동료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당연히 도와줘야 하고, 또 그렇게 도움을 받았던 곳. ‘싫어’라는 말보다는 ‘좋아’라는 말을 더 많이 했던 곳. 지금 신문을 만들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국민대신문사는 그런 곳일까. 앞으로도 그런 곳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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