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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시평]이제는 ‘모모’를 찾아 나설 때다
 
기사입력 2018-01-02 10:51 기사수정 2018-01-02 10:51
   
 


‘모모’. 소설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다.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을 내가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다. 영어로는 ‘unknown unknowns’라고 불린다. 모모는 ‘모알’과 다르다. 모알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 2018년 설날에 눈이 올지는 모알의 세계에 있다. 눈이 올지 모른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모의 세계에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예를 들기도 힘들다. 한편, 모모와 모알과 함께 ‘알알’이 있다. 알알은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2017년 설날 서울에 눈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알알이다.
그렇게 보면 모알을 알알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시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18년 새해가 되면 모알의 세계에 있던 많은 것들이 시간의 빛을 받아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알알이 된다. 2018년 설날 서울의 날씨를 지금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시간이 흘러 그 때가 되면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모는 항상 과거형으로만 표현될 수 있다.
시간은 모모를 알알로 만들기도 한다. 2017년 11월에 일어난 포항 지진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모모였다. 지진이 그 시각에 일어날 것을 누구도 몰랐으며, 우리가 모른다는 것조차 우리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나 이제 포항 지진은 알알이 되었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포항 지진이 모모였는지 또는 모알이었는지는 우리의 태도에 큰 차이를 만든다. 포항 지진이 모알이었다면, 다시 말해서 적어도 그것이 일어날지 말지에 대해서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면,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보다는 좀 더 나은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모는 모알과 달리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우리를 덮치는 맹수와 같다.
하지만 시간의 빛만으로는 어둠 속에 있는 모모를 모두 드러낼 수 없다. 인간의 도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알알이지만 과거에는 모모였던 것들을 생각해 보라.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긴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알알이지만 20세기 이전 사람에게는 모모였다. 우리 삶을 혁명적으로 바꾼 것들은 대체로 모모의 세계에 있던 것들이다. 전화기가 그렇고 인터넷이 그렇다. 한편 모모는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의 삶 자체를 앗아가기도 한다. 79년 이탈리아의 폼페이에 살던 사람들 대부분을 죽인 것은 모모였다. 그런 점에서 모모는 번영의 얼굴과 사신(死神)의 얼굴 모두를 가지고 있다. 모모는 우리를 번영케 하면서 동시에 거두어 간다.
모모와 모알, 그리고 알알을 여기서 말하는 것은 대학이 지향하는 ‘큰 배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배움’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몸에 배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쁜 것은 저절로 몸에 배기 마련이라 ‘배울’ 필요가 없지만, 좋은 것은 그렇지 않기에 몸에 배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배움’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큰 배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자신이 아는 알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생겨난다고 생각하곤 한다. 알알의 세계 속을 거닐면서 살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연구란 모알을 알알로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학에 속한 연구자에 기대하는 역할이란 모알을 알알로 바꾸고 이를 다시 피교육자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여기에서 빠져 있는 것은 모모이다.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 모르는 것을 추정하는 데 길들여져 있다. 우리는 모모의 세계도 결국 알알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모모는 알알과 대칭적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모모는 알알의 거울 속에 없다. 아마 모모와 알알이 시소를 탄다면, 올라간 알알은 다시 내려오지 못할 것이다. 모모가 알알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모모가 그렇게 무겁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모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추정할 수는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알알의 세계가 아주 작았을 때 사람들은 모알의 세계도 매우 작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점점 지식을 넓혀 나갈수록 모알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넓어졌다. 우리 은하가 유일한 은하가 아니라는 것이 알알이 된 순간, 얼마나 많은 것이 모알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이렇듯 알알의 확장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모알의 세계가 확장되었다면, 이 모두를 포함하고 있던 모모의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어야 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모알을 찾기 위해서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만 모모를 찾기 위해서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큰 배움이란 이렇게 넓은 모모의 세계를 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알알과 모알을 넘어 모모를 찾아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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