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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기자의 눈 : 전우에게 보내는 편지
 
기사입력 2018-01-02 10:53 기사수정 2018-01-02 10:53
   
 


추운 겨울, 잿빛 구름이 하늘을 한가득 뒤덮고 날카로운 바람만이 쌩쌩 오가는 거리 위를 홀로 걸었다. 매서운 추위가 내 볼을 벌겋게 물들이더니 이내 내 마음 한구석으로 사무치게 들어왔다. 시린 몸과 마음을 안고 힘겹게 적을 뗐다. 그렇게 길을 걷다 보니 문득 단상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대외적으로 두 명의 거구가 세계를 위협한다. 한 명은 콜라를 마시며 주구장창 TV를 보다 떠오른 악념들을 여과 없이 내뱉곤 한다. 그 말은 세계를 긴장시키며 우리도 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한 명은 치즈를 좋아한다. 특히 스위스산 ‘에멘탈치즈’를. 그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잔인하게 숙청하며, 시시각각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날려 전 세계의 관심을 끈다. 시쳇말로 이 둘은 ‘관종’(관심종자, 관심 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두 관종의 말과 행동에는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위협하는 힘이 있다.
이렇게 대외적으로도 불안한 시대에 우리 안 현실은 어떤가. 지난 11월에는 수능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한 포항지진으로 우리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연재해 외에도 온수역 사고, 용인, 평택 등에서 일어난 타워크레인 사고, 제천 스포츠센터 사고 그리고 못다 핀 청춘을 외롭게 죽음으로 몰고 간 현장실습 사고까지 다양한 사고가 우리를 위협하고 내면에 불안감을 깊이 심어 준다. 이런 위협 말고도 보이지 않는 위협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가상화폐가 수없이 거래되며 통화 안정성을 흔들고 있으며, 수많은 이들을 투기로 내몰았다. 막강한 자본을 지닌 이들의 놀음에 애먼 서민들만 죽어나고 있다.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가 대표로 낸 ‘2018년 세계불평등 보고서’를 보면 대자본의 횡포가 명확히 드러난다. 1980년 이후 약 40년간 세계 상위 0.1%와 하위 50%가 늘린 부가 같다니 참으로 기형적 현실이다. 이런 기괴한 자본주의 시대의 비가시적 위협은 우리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렇듯 ‘이 시대는 전쟁터’라는 삶의 비유는 온당해 보인다. 그러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전우다. 그런데 이 표현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 전우(戰友), 전쟁을 함께하는 친구란 뜻인데 현 시대는 자신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합종연횡하며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에만 바쁘다. 전쟁에는 목적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우리가 하는 전쟁엔 목적도 명분도 없어 보인다. 수많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갈라져 서로를 짓누르고 그 위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얻는 일시적 쾌감과 환각만을 좇을 뿐이다. 심지어 여자와 남자로까지 자타(自他)를 구분 짓고 지탄과 힐난을 서로에게 가한다. 배려와 존중이 사라진 지금 공감이 놓일 곳은 없다.
이런 시대가 추운 겨울만큼 가슴시리고 안타깝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제국주의시대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던, 피로 물들었던 그런 시대는 끝났다. 따라서 우리의 적 또한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의 적은 보이지 않는 거대자본, 부당한 사회 시스템, 정의를 외면한 악법 등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엔 공감이 부재했고, 또 다시 사람이 적인 포스트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공감이 사라진 사회는 죽은 사회다. 죽은 사회에서 보내는 망자를 위한 RIP(Rest In Peace)는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필자에게 안타까움을 더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에도 공감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19세기 미국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은 지휘관의 눈을 속이고 오조준 사격을 했다. 가늠자와 가늠쇠를 통해 바라본 적이 같은 국민인데 어찌 쏠 수 있겠나. 또 제1차 세계대전 첫해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의 가슴 따뜻한 ‘크리스마스 휴전’ 일화는 공감의 진수를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때도 존재했던 공감이 사라진 지금의 현실에 대해선 함께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공감은 내가 아닌 사람이 처한 상황에 나를 대입시키고 그 사람의 감정을 내 것으로 온전히 느끼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우린 스스로에 대해 나아가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빡빡하고 차가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본인조차도 돌아볼 시간이 없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좀 더 나은 시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본인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히 요구된다. 지금 당장 내가 미처 놓쳤던 사람을 떠올리며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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