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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고]마음이 원하는대로 산다
 
기사입력 2018-01-02 10:58 기사수정 2018-01-02 10:58
   
 


문인이자 영문학자로 유명한 수주 변영로 선생(1898~1961)은 56세에 수필집 「명정 사십년」을 출간했다. 명정(酩酊)이란 “술에 몹시 취함”이란 뜻이니 말 그대로 술과 함께 살아온 40년, 즉 평생 기억에 남는 술자리와 그에 따른 실수담을 고백한 책이다. 나는 경영학과 74학번으로 79년 봄 졸업을 했으니 금년으로 꼭 40년이 되었다. 취해서 실수하며 살아온 날들로 치자면 나도 변영로 선생 못지 않다. 물론 깊이와 격에서야 비교도 안 되겠지만. 취한 채로 또는 맨 정신으로 그렇게 흔들리다 보니 어느새 40년. 오늘은 파도를 헤치며 살아온 40년 이야기를 몇 토막 스타카토로 해 볼까 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앞날이 캄캄했다. 성적은 엉망이고 군대도 미필이고.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취직은 할 수 있을까? 광고회사를 가고 싶은데 실력은 안 되고. 그렇게 몇 년을 방황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두군데 회사의 합격 통지를 동시에 받게 되었다. 쌍용건설 홍보실과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양손에 술잔이었다. 한손엔 양주 또 한손엔 막걸리. 당시 잘 나가던 쌍용그룹은 좋은 대우와 직급을 약속했지만 제일기획은 거의 신입사원급 홀대였다. 어느 회사를 갈까?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어떤 옷을 입을까? 차를 가져갈까 놓고 갈까. 얼른 뛰어서 건널까 다음 신호를 기다릴까. 이런 판단과 선택이 모여서 결국은 인생이 된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자. 마음이 정하는 대로 따르자. 내 인생의 첫 번째 결정적 선택은 제일기획이었고 그로부터 나는 평생 광고쟁이가 되었다. 제일기획에서 몇 년이 지나자 다시 독립병이 도졌다. 광야에 나가 내 이름 석 자 걸고 독립회사의 깃발을 휘날려 보자. 요즘 말로 벤쳐이자 스타트업을 꿈꾼 것이다. 회사에서는 내가 조금 더 필요했던지 사표를 수리하는 대신 경영진의 끈질긴 회유가 이어졌다. 마지막 카드로는 그룹 최초로 나에게 기존 연봉의 세 배를 주겠다는 제안까지 해 왔다. 흔들렸다. 몹시 흔들렸지만 마음의 소리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정중히 예를 갖춰 뿌리치고 독립선언을 했다. 나를 만든 두 번째 선택이었다. 가지 않은 길, 그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지금도 궁금하지만.
1인 카피라이팅 회사인 <한스카피>를 거쳐 CF제작사인 신개념 프로덕션 <킬리만자로>를 창립했다. 회사는 운 좋게도 업계 선두권을 유지하며 잘나갔다. 지금의 가로수길에 아담한 빌딩도 마련할 만큼 돈도 벌었다. 그러나 그뿐, 광고인으로서의 보람과 가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배낭에 책 몇 권 넣고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마을에 들어가 시월 연휴를 보내고 왔다. 그리고는 잘나가던 회사를 후배 직원들에게 미련없이 넘겨주었다.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광고대행사 컴투게더를 설립하고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바람부는 들판에 다시 나선 것이다. 세 번째 선택이었다.
그러한 선택의 이유는 의외로 사소했다. 우리가 낸 아이디어로 우리 회사가 제작한 CF가 그해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그랑프리를 받게 되었는데, 수상의 영예와 광고인으로서의 보람은 발주처인 광고대행사 몫이었고 나는 갑을병의 사슬 구조에서 제작사 병으로서 적당히 돈이나 버는 무대밖의 처지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철저히 나답게 살자. 쥐뿔도 없으면서 고집을 피웠다.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렇게 시작한 광고대행사 컴투게더는 올해로 20년이 되었고 나름 광고계에서 유의미한 존재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2015년 봄. 국정농단의 작은 축인 광고회사 강탈 미수 사건이 우리 회사를 중심으로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살짝 불던 그 시절,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가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자 포스코는 계열 광고회사인 포레카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컴투게더는 응찰 결과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었고 포스코와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막바지 과정에 있었다. 그때 비선 조직을 자처한 사람들이 느닷없이 나타나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해 왔다. 청천벽력이었다. 대명천지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이리저리 확인해 본 배후는 그럴만한 힘을 가진 거대 조직이었다. 협박은 강도를 더해 갔고 나는 벼랑 끝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되었다. 나 개인을 떠나 가족과 회사 전체의 안위가 걸린 선택이었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신언서판.
내 인생에도 잘못된 선택이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후회도 많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이 모여 우리의 인생을 만드는 것이다. 국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내게 물었다. 그 협박들을 어떻게 견뎌냈냐고. 나는 이렇게 답했다. “학교에서 불의와는 타협하지 말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국민대에서 이교위가, 사필귀정을 4년 동안 배웠다. 그 정신을 40년 동안 잊지 않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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