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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10년이 걸렸다면 앞으로 10년 뒤는!
 
기사입력 2018-05-14 09:42 기사수정 2018-05-14 09:46
   
 


2008년 5월.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건축가로서는 정말 대단한 행운을 얻었다. 정말 우연치 않게도 북한의 평양에 세워질 ‘어린이용 항생제 제약 공장’의 설계를 의뢰받았다. 설계를 처음 의뢰받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물론 정부의 대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설계비를 받지 않는 조건이었지만 말이다.
평양에 가기 전 북측 관계자들과 실무협의를 위해 개성을 방문했다. 남측 개성공단을 지나 북측 경비지역을 건너면서는 ‘여기가 혹시 영화 세트장이 아닌가?’ 혹은 ‘이 길을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같은 말을 반복하는 북측 실무진에게 꿀리지 않고 미팅을 무사히 마쳤던 것 같고, 밥맛은 조금 없었던 것(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떨려서) 같지만, 그래도 반가운 김치, 잡채, 고추장 등의 음식을 대접 받고 그 길을 다시 잘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중국 심양을 거쳐 고려항공을 타고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해 정말로 뒤숭숭한 시기였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지인들께서 많이 만류하셨고 설마설마하는 조바심도 있었지만, 세 번의 개성 방문 후에 생긴 약간의 자신감과 내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 평양에 지어진다는 일종의 쾌감과 의욕이 미사일보다 조금 더 셌던 것 같다.
순안공항에서 숙소인 고려호텔과 낙랑구 현장, (통제되어 항상 관계자가 동행했던)식당을 오가며 감리를 진행했다. 그리고 두 해가 걸린 어려운 공사를 마치고 준공식을 위해 다시 평양을 찾았을 때는 1차 핵실험이 발발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는데, 그 때의 분위기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2018년 5월. 나는 건축가이기에 정치, 군사, 외교와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오로지 건축과 그와 관련 있는 약간의 경제 정도를 알 뿐이다. 처음 개성에 다녀왔을 때 흔들리는 차안에서 보았던 개성 시내가 떠오른다.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어, 도로가 너무 엉망이네(토목)’, ‘산에 왜 이리 나무가 없지?(조경)’, ‘길에 신호등이 없네(전기설비)’, ‘회의장소의 화장실에 잠깐 들렀는데 물이!(기계설비)’, ‘주택, 아파트, 상점이 모두 60~70년대 세트장(건축)’ 따위의 생각을 했더랬다. 그보다 더 신났던 건 한강과 무언가 다른 분위기의 대동강변 땅들이었다. 동료들과 ‘야, 한강변 아파트값 내려갈지도 몰라!’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들 녀석에게는 건축학과 졸업할 때쯤이면 남북교류가 시작될 거고, 그러면 취직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는 막연한 조언을 했다. 그 후 올해 4월까지 나는 많이 기가 죽어 있었는데, 10년 전 내 이야기가 이제라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 본다.
젊음은 꿈이다. 그것도 큰 꿈! 꾸었던 꿈만큼 이룬다고 하더라.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더 가 보고 싶다. 제약공장은 잘 가동이 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또 우리 아들, 딸들이 평화 속에 취직 걱정, 집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는 그런 좋은 일들이 없는지 돌아보고 싶다.
1980년 5월. 건축과에 입학해 철모르던 시절, 매캐하던 최루 가스 속에서도 북악산의 진달래와 2호관 앞의 철쭉은 참 예쁘게 피었었는데. 오늘따라 북악 캠퍼스에 정말 가 보고 싶다. 그때는 젊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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