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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오후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기사입력 2018-08-27 11:04 기사수정 2018-08-27 11:04
   
  기자의 눈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늘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의 웃음이 내겐 행복이었고, 그 웃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우리 사랑의 합이 10이라면 7이상은 내 것으로 가득 찼다. 감정의 영역에도 엄연히 갑과 을은 존재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갑질’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모 백화점 VIP 고객으로부터 촉발된 갑질 논란은 대기업 총수 일가의 만행에 의해 극에 달했다.
사실 어찌 보면 개인적 혹은 사회적 영역에서 갑과 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오래 전 연극 <두 발은 나쁘고 네 발은 좋다>를 관람했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각색한 연극이다. 연극 속 동물들은 진정한 평등 사회를 꿈꾸며 인간들을 모두 죽였지만, 동물들만 남은 사회 속에서도 권력 관계는 다시 형성됐다. 갑과 을이 없는 사회는 이상향일 뿐 갑과 을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갑질 논란에 관한 논의는 갑과 을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안 된다. 갑질 논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갑’이 아닌 ‘질’에 있기 때문이다. 접미사 ‘-질’은 보통 어떤 행위를 폄하하거나 앞에 붙은 명사의 행위를 낮잡아 일컫는 데 쓰인다. 갑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 남용했을 때 그 행위는 비로소 갑질이 된다. 이는 사회적 문제로도 이어진다. 기형적으로 남발되는 갑의 행위 즉 갑질을 멈추기 위해선 갑이 진정한 ‘갑’이 돼야 한다.
갑이 진정한 갑이 되기 위해선 ‘갑’이 함의한 의미를 찾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갑의 지위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갑과 을의 위치는 시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따라서 갑의 위치에 서게 되면 늘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겸손을 유지하는 각고의 노력도 필요하다.
상대적 우월감에 젖어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를 때 그 행위는 갑질로 낙인찍힌다. 나의 연애에서 나는 철저히 을의 입장에 놓였다. 어쩌면 ‘계(癸)’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난 분명 행복했다. 나의 갑이었던 그녀는 내게 갑질을 하지 않았고, 그런 그녀를 나는 진정한 갑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어린 왕자』에는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라는 구절도 등장한다. 보이지 않는 갑의 책임을 이해하고 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 갑은 을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갑질을 하는 갑의 무리들이 사라지고 사랑스러운 갑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가슴 속 붉은 ‘장미’에게 단비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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