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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밭골]관객을 ‘만드는’ 시대
 
기사입력 2018-09-17 10:27 기사수정 2018-09-17 10:40
   
 

며칠 전 영화를 예매하려고 영화관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조금 놀랐다. 9월 초순인데도 벌써 이번 달 말 예매 페이지가 오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고작 사나흘 간격을 두고 예매 페이지가 열리곤 했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달력을 보고 알았다. 곧 추석이었다. 주말과 대체공휴일을 낀 5일 간의 연휴가 이달 말에 있었고, 대목을 맞아 영화관에서는 일찌감치 예매 페이지를 오픈한 것이었다.
그런데 상영시간표를 보니 영화가 딱 한 작품뿐이었다. 물론 날짜가 다가올수록 다른 작품들도 천천히 상영시간표에 추가될 터였다. 하지만 특정 영화 한 편만 몇 주 전부터 상영관을 확보한 채 예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그 영화의 배급사가 해당 영화관의 자회사임을 알게 되고 나서야 씁쓸하지만 납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부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스크린 독과점은 우리 영화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 영화시장은 일부 대기업이 영화 기획 단계부터 제작, 투자, 배급, 극장, 부가 판권까지 시장의 전 과정을 독식하는 구조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시장에서 하나의 기업이 50% 이상 혹은 3개 기업의 합이 75%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보이면 독과점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가 공개한 극장의 매출액 기준 시장 점유율(2016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형 영화관 세 곳이 전체 시장의 97.1%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곳 모두 상영뿐 아니라 제작, 투자, 배급 등 영화 산업의 다른 분야에도 진출해 있다. 물론 자사나 계열사가 제작 또는 배급에 참여한 작품의 흥행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또 특정 영화에 대한 수요가 많다면 스크린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당연하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시장 원리를 들며 현재의 영화 산업 구조를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을 살펴보면 스크린 개수가 수요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수요가 스크린 개수를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관이 특정 영화의 스크린만을 많이 확보해 놓으면 관객은 도리가 없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위 다양성 영화들은 최소한의 스크린조차 확보되지 않으며, 상영 시간대조차 조조나 심야에 몰려있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관객들은 따로 시간을 내거나 다른 지방으로 ‘원정’을 가서 관람을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아니면 그냥 상영관이 가깝고 시간대도 맞는 독과점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개봉한 영화 「군함도」는 전국 1961개의 스크린(7월 27일 기준)에서 상영돼 논란이 됐다. 당시 상영 점유율은 50%를 웃돌았지만, 좌석 점유율은 30.3%에 그쳤고 이는 박스오피스 2위였던 「슈퍼배드 3」보다 낮은 수치였다. 이에 ‘배급사 측이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위해 관객들의 수요는 무시한 채 일단 상영관만 많이 잡아 놓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소수의 대기업이 전체를 독식하는 지금의 영화시장 구조는 분명 기형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익조차 보호받기 어렵다. 당장 구조를 뜯어고치는 건 어려우니 스크린 상한제 등의 규제 시행부터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
정희연, 「[DA:박스오피스] 155만 ‘군함도’, 스크린 2027개→1961개…좌석 점유율도 하락」, <스포츠동아>, 2017.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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