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기사제휴
 
 
 
  [교수시평]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우리 대학의 발자취를 되짚어 본다
 
기사입력 2019-01-02 10:45 기사수정 2019-01-02 10:45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한해 국가적 차원의 대사(大事)를 꼽는다면,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과 뒤이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잘 알듯이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그해 4월 수립되었다. 3·1독립선언서의 첫 구절에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고 했다. 같은 해 9월에 출범한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법 전문에는 “아(我) 대한인민은 아국(我國)이 독립국임과 아민족(我民族)이 자유민임을 선언하였도다”라고 하여, 앞선 독립선언서 내용의 일부 문구를 고쳤다. ‘오등(吾等)’이 ‘대한인민’으로 ‘조선인’이 ‘민족’으로 달라졌는데 이는 ‘국민’과 ‘민족’을 강조한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바꾸고 ‘민주공화제’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또한 ‘선언하노라’를 ‘선언하였도다’라고 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된 나라의 정부라는 점을 대내외에 분명히 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민’을 바탕에 두고 이후 일제강점기 내내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힘찬 투쟁을 이끌었다. 비록 우리 손으로 일 제를 몰아내지는 못했지만,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 이름과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민에게 광복의 큰 희망을 주었다. 마땅히 해방된 나라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임시정부 요인들은 미군정으로부터 ‘임시정부’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 자격으로 꿈에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야만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남북이 38선으로 갈라졌던 해방 정국에서 ‘제2의 독립운동’을 천명하고 완전한 독립국가 건설을 지상과제로 삼았다. 이와 함께 새로운 나라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설립을 추진하여, 마침내 1946년 ‘국민대학’을 탄생시켰다. 바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학’을 실현하고자 했던 셈이다. 당시 <국민대학건립취지서>에 따르면 “……확고부동의 국가 기초를 세우는 신념을 국민의 머리에 주입할 필요를 느끼는 바이다. 우리 국민대학의 목표는 이러한 신념으로 청년에게 심오한 학술을 배양하여 국민 대중의 지도자 될 소질과 국가유용의 인재를 육성하고자”라며, 건학의 뜻을 명확히 밝혔다. 1949년에 만들어진 우리 대학 교가에도 “우리는 새로운 민주의 나라, 사공을 기르는 국민대학”으로 다시금 그 뜻을 강조했다.
이러한 역사적 발자취를 곰곰이 되새긴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 근현대사의 여정에서 우리 대학이 차지하는 역사적 위상과 사명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변화에 맞춰 새로운 출발과 도약을 위해서는 예나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지나온 발자취를 꼼꼼하게 살피고, 고치고 채울 것을 깨우쳐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학이 임시정부의 애국정신과 민주정신을 얼마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실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 대학은 그간 구성원들의 땀과 노력으로 대형대학의 훌륭한 면모를 갖췄고, ‘애국정신’과 ‘기업가정신’을 구현하고자 애쓰고 있다. 다만 이 시점에 우리 대학이 초심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얼마나 확고히 다졌는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 ‘커진 덩치만큼 그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이루었는가?’ 말이다. 사실 대학의 뿌리가 되는 창학(創學) 정신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고, 이를 지키고 재해석하여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 ‘국민인’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기사제휴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