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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기사입력 2019-01-02 10:52 기사수정 2019-01-02 10:52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스무 살 여름, 무작정 배낭여행을 계획하고는 친구와 돈을 모으기로 약속했다. 알바 어플리케이션을 하루 종일 뒤져보다 임금을 즉시 지급한다는 한 단기 알바를 찾았다. 딱 하루만 일해도 되고, 집 주변에 통근 버스도 운행한다고 적혀 있었다.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린 정말 겁도 없었다. 그곳은 최악의 알바로 손꼽히는 택배 물류센터 현장이었다.
나는 택배 입·출고 업무에 배정됐다. 현장에 도착하니 근로계약서를 적으라고 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볼 시간이 없었다. 빽빽한 글자들로 가득 찬 계약서에 빠르게 서명했다. 그 종이엔 아픈 덴 없는지 적는 문진표도 있었다. ‘아프다고 하면 좀 더 쉬운 일 시켜주려나?’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계약서 속 문진표를 담당자가 일일이 읽을지, 구석에 더미 채 쌓아둘지는 알 길이 없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웅웅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사람들은 기계가 된 듯 물건들을 배열하고 옮겼다. 오후가 되자, 습한 공기가 물류센터 안에 가득 찼다. 한여름 찜통더위의 폐쇄된 물류센터에서는 30분만 서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목이 타 정수기를 찾으러 다녔지만 빈 통이 대부분이었다.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지친 걸음으로 물건을 안고 입고 선반 사이로 들어갔다. 그때, 꼭대기 층에 쌓여있던 3kg 남짓의 아령이 내 몇 발자국 앞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이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친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알바를 마치고 다음날에는 팔다리가 후들거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3일만 빡세게 버텨보자’던 친구와의 다짐은 땀과 함께 증발해 버렸다.
지난 12월 10일, 스물네 살의 청년이 노동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를 봤다. 내가 1년도 더 지난 경험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군대에서 갓 전역한 그는 충남 태안의 한 하청업체에 임시직으로 취직했다. 원래 업무는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검뿐만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석탄이 벨트에 닿지 않도록 삽으로 퍼내는 일도 했다. 몸을 많이 숙이거나 균형을 잃으면 벨트 아래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던 그는 컨베이어 벨트 아래서 숨진 채 발견됐다.
나는 또한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붙어있던 노란 포스트잇들을 기억한다.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고 홀로 출동했다 변을 당한 스무 살 청년을 기억한다. 이 또한 개인의 과실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과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한 참사였다. 구의역 사고 당시, 반복되는 인재(人災)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함께 짧은 생을 마감한 청년을 추모하는 물결이 일었다. 하얀 국화꽃이 가득했던 추모의 공간에 누군가 이런 문구를 남겨두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또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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