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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시평]3·1운동의 기억과 기념에 대하여
 
기사입력 2019-02-28 12:51 기사수정 2019-02-28 12:51
   
 

삼일절을 뒤따르며 시작하는 봄 학기, 준비하는 마음이 예년과 남다르다. 금년에 3·1운동이 100주년을 맞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백주년은 일생에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행운과도 같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역사란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거나 공부하고 기념한다는 것, 그것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과거는 현재의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기록된다. 그렇게 과거의 한 사건이 현재의 사실이 된다. 그래서 ‘역사란 어차피 현대사(B. 크로체)’라는 말이 있다.
3·1운동은 가히 혁명적 사건으로 기념될 만하다. 1919년 그날, 우리 선조들은 조선의 자주 독립을 선언했고, 그것이 동양과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올 것임을 천명했다. 독립될 국가는 오래된 군주정의 복고가 아니었다. 민주공화정 만세가 외쳐졌다. 이 운동을 계승한 임시정부와 그 뒤를 잇는 대한민국은 헌법에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했다. 이 정치체제는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어 긴 역사의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백 년 전 정작 서양에서 이를 명시한 헌법은 유례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니 3·1운동은 혁명적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민주공화정은 지난하면서 굴곡진 역사의 산물이다. 2천 5백여 년 전 고대의 아테네인과 로마인이 긴 갈등과 투쟁 속에 각각 민주와 공화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다. 나라의 주인이 시민임을 강조하는 것이 민주 정신이고, 모든 시민이 공존하고 공생하며 공영한다는 정신이 곧 공화다. 아테네인들은 시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제도화했다. 로마인들은 억압적인 왕정을 폐지한 이후, 국가는 공공의 것(res publica, 공화정)이자 정치는 공공의 일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긴 신분 갈등 속에서 공화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두 정치체제는 고대의 시대적 한계를 넘지 못했고, 오래가지 않아 붕괴됐다.
근대사는 가히 민주공화정의 실현 과정이었다고 할만하다. 로마제국 시대와 중세라는 긴 터널을 거친 후 서양에서 이 정치체제가 차츰 재등장했다. 급기야 이백여 년 전, 근대 시민혁명들이 민주적 공화정을 실현하고자 분투했다. 그 연속선상에서 백 년 전 이 땅의 주인들이 민주공화정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이후 우리의 현대사 백 년 동안 이를 실현하려는 험난한 역사가 펼쳐졌다. 이제 어느 정도 민주정치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극단적 경쟁과 사익 추구 및 집단적 계층적 대결이 만연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공화정신이 아닌가 싶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는 3·1운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 민주와 공화라는 두 수레바퀴를 앞과 뒤에서 끌고 밀며 전진시킨 힘은 ‘시민적 덕성’이었다. 그것은 자유와 참여와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시민이 그 정신을 발휘했고, 서양 근대사회의 주역인 시민도 그랬다.
백 년 전 우리 선조들이 남녀와 노소, 빈부와 직업의 차이를 넘어 민주공화정을 한 목소리로 외쳤던 힘도 그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이번 삼일절에 우리가 기억하고 기념할 것은 현재가 있게 한 과거의 힘, 바로 그 시민적 덕성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백 년이라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 역사를 지속적으로 전진시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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