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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취재]국민*인에게 국민대란?
 
기사입력 2019-02-28 13:04 기사수정 2019-03-23 16:59
   
 
막학기

❶ 양정원(빅데이터경영·15) ♦국민대는 ‘떠나기 아쉬운 곳’이다.♦
1학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가 2학년이 되고 나서 학생회나 학회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 이후로 점점 새로운 경험들을 추구하게 돼서 이후에 해외봉사 활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왔고 그게 저한테 큰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사실 학교를 더 다니고 싶은데 막학기라 아쉬운 점이 많아요. 물론 대학 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학교 사이트를 찾아보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으니까 아직 학기가 남으신 분들은 꼭 한 번씩 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❷ 류현진 (국제통상·12) ♦국민대는 ‘일신우일신’이다.♦
대학생이라는 위치는 청소년이 끝나고 성인의 삶의 시작이에요. 12년간의 시험 생활이 끝나고, 자유를 만끽하는 신입생 시절에서 중간·기말고사를 거쳐 가면서 성적을 받게 되고, 그에 따른 책임감을 느끼며 학생들은 변화해 가요. 학교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학생들의 수준이 점점 더 높아지고 교수님들 역시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강의 수준 또한 올라갔어요. 7년 전 제가 입학했을 때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는 매우 다른 학교가 되어버렸죠. 추억으로 남겨진 시설들도 있고 새로 생긴 곳도 있어요. 결국 학교도 학생도 늘 하루하루 발전하고 바뀌어가기 때문에 ‘일신우일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조금 더 어른이 되어버린 저 역시도 7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이죠.


❸ 강민정 (바이오발효융합·14) ♦국민대는 ‘뭉클함’이다.♦
저는 일 년간 재수를 하고 국민대에 입학해서인지 학교가 주는 소속감이 너무나도 소중했어요. 매일 아침 운동장을 가로질러 과학관으로 걸어갈 때면,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뭉클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막학기여서 곧 있으면 학교를 떠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과 함께 뭉클함을 느끼며 학교를 다닐 것 같아요.


❹ 문형웅 (융합기계공학 ·15) ♦국민대는 ‘재도전’이다.♦
저는 군 복무 중 수능을 다시 치고 국민대에서 새 출발을 했어요. 정말 올 것 같지 않던 막학기가 다가왔네요.
입학했을 때의 저는 열심히 놀았던 기억밖에 없는데 많은 신입생이 벌써부터 취업과 스펙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나름 3년 동안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이런 후배들을 보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년간 학교생활을 하면서 제게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제 옆에 있었기에 자극을 받아 저도 많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마지막 학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는 게 목표예요.
복학생

❶ 장여진 (국제·15) ♦국민대는 ‘아쉬움’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학교도 계속 변합니다. 저는 여전히 일학년 때의 저와 그 당시의 학교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재작년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다녀온 이후 학교가 정말 많이 변했더라고요. 북악관부터 도서관까지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가장 익숙했던 공간이 달라짐으로 인해 낯설었고, 저 또한 저학년 때의 저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돼 무섭기도 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대학 생활의 마지막이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아직 사회에 나서기 두려운 마음도 있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필요해 막학기를 남기고 휴학을 했어요.
국민대는 제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공간입니다, 다만 왜 더 열심히 하지 못했는지, 왜 오롯이 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했는지…….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남네요.


❷ 이명진 (나노전자물리 ·15) ♦국민대는 ‘미로찾기’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휴학을 했습니다. 막상 휴학하고 보니 쉽게 게을러졌고, 긴 시간 동안 이룬 게 없다는 생각에 후회했어요. 그동안 푹 쉰 만큼, 복학 후엔 그 이전보다 더욱 부지런히 나아가야겠죠.
저에게 학교생활이란 ‘미로찾기’처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길이 있고 없는 미로처럼, 벽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고 뚫린 길을 찾기 위해 열중하려고요.


❸ 이정우(행정정책·16) ♦국민대는 ‘문제점이 보이는 곳’이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 학교에서 강제로 수강 과목을 배정해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학교를 수월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고 첫 수강신청을 하면서 학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많이 느꼈네요. 또 학교를 오랜만에 복학하는 거라 사실 학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점이 많은데 군대에서 전역한 복학생을 위해 학교에서 지원책이 있으면 좋겠네요. 복학하고 나서 신입생 때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학교 수업과 공무원 시험을 병행할 예정이에요.
신입생

❶ 송민재 (정치외교·19) ♦국민대는 ‘북한산 정상’이다.♦
국민대를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북한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산 정상에 오르면 더 큰 세상이 보이듯,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면 한층 더 성장하고 넓은 시야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설렙니다. 앞으로 국민대에서 내가 뭘 잘하는지, 흥미는 뭔지, 어떤 꿈을 갖고 싶은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싶어요. 국민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운 민족의 혼이 담긴 장소라고 들었습니다. 국민대 최고!


❷ 강동호 (나노전자물리 ·19) ♦국민대는 ‘길동무’다.♦
앞으로 국민대는 제 옆에서 저를 항상 도와주고 이끌어 줄 존재이기 때문에 ‘길동무’라 표현해 봤어요. 모든 수시를 물리학과로 지원했는데 합격한 학교 중 국민대 물리학과 교육과정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고학년 때 배우는 나노소재 교육과정이 제 흥미와 겹쳤기 때문이에요.
국냥이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도 기대돼요! 국민대 면접을 보러왔을 때 깨비를 마주쳤는데, 국민대가 귀여운 고양이들로 유명한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답니다.
졸업까지 목표가 있다면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색다른 길을 개척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흔히 따라가는 길엔 이유가 있겠지만 나만의 방향을 만들어야 '내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❸ 장준하 (언론정보 ·19) ♦국민대는 ‘진국’이다.♦
국민대에 지원하기 전에 이것저것 찾아봤었는데 학교 근처 지역이 그린벨트라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그런데도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라서 내실이 굉장히 단단한 학교라는 생각이 첫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알고 보니 진국이었다’는 뜻으로 국민대를 표현해 보았습니다. 제가 배우고 싶은 학과를 선택한 만큼 교수님들의 강의가 가장 기대됩니다 . 언론정보학부 교수님들께서 굉장히 좋으신 분들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밖에도 학교 선배님들, 동기들과 함께 할 다양한 활동들이 기대됩니다. (연유 바게트 빨리 먹어보고 싶어요. 소곤소곤)
교수님

❶ 최규익 교수 (국어국문·77)

♦북악관 9층 복도에 43년째 눈이 나린다♦

텅빈 겨울밤. 아무도 없는 북악관 9층 복도를 혼자 걷는다.
천천히 걸으면 먼 길이 되는 그 길.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북쪽 창 밖에선 43년째 눈이 내리고 있다.
창 너머로는 산. 산 뿐이다.
복도 끝에는 성곡 동산이 아래로 보이고
더 아래로 가로등이 혼자 빛나고 있을거다.
눈보라는 하얗게 시간을 에인다.
에여진 시간이 눈가루가 되어
창틈을 비집고 몇 알 고개를 내민다.
그 눈 알갱이를 만져본다.
시간의 체온?
눈은 체온의 무게도 없이 손끝에서 사라진다.
1976년 12월 2일
처음 국민대학교에 입시를 보러 왔다.
그날부터 43년째
나는 여전히 이 복도를 걷고 있다.
그리고 여기는 항상 겨울이고
언제나 그렇듯 항상 눈이 온다.
눈 알갱이에게 말이라도 걸어본 것처럼
나는 슬몃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거진 떠날때가 되었군’ 하고 나는
시간의 눈 알갱이에게 말한다.
이 복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을 향해 천천히 걷는 동안 43년이 흘러갔다.
84년 조교시절엔 국문과 대학원 학회실에서 무단 기숙, 6개월이나 숨어 살았다.
15층에선 내 스승인 하얀 시인이 언제나 하얀 시를 쓰고 있었다.
24시간 쓰고 있었으므로 평생을 쓰고 있는 것이 된다.
북악관 전체에서 그 시간. 깨어있는 사람이라곤 달랑 그와 나 둘뿐이었다.
밤12시, 복도 양쪽 끝에서 철문이 닫히며 9층은 더 캄캄해진다.
그때 나는 침낭을 깐 학회실 바닥에서 촛불을 켰다.
한개. 두개. 세개
삼각형이 되게 양초 세 개를 늘어놓고 불을 붙이면
성냥팔이 소녀의 그것처럼 마음 한쪽에 꿈이 생기고
그만큼만 따뜻해지곤 했다.
그때의 내가 여전히 살고 있는 학회실을 지나 과사무실까지 걷는데 또 30년이
지나간다.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본다.
먼 국문과 대학원 학회실에서 쿨럭하는 기침소리가 들린다.
옛적의 그 조교였던 나도 그 방에서 혼자 나이를 먹나보다.
무덤 속 같이 캄캄한 곳에 스스로 갇혀
그저 촛불이나 몇 개 켜는 게 나의 삶이었나..... 생각한다.
남쪽 창밖으론 도시의 불빛이 맨숭맨숭 반짝인다.
더 이상 유혹적이지도 않고 그립지도 않다.
그러니 도시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다.
내가 가는 길은 산으로 가는 길.
이제 복도 끝이 꽤 가깝다.
알 수없이 점점 더 복도는 깊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시간은 고요가 되어 쌓인다.
쌓일수록 고요는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이제는 끝에 거의 다 왔다.
9층 끝에서 혹시 9층을 버리고 10층으로 올라가게 될지는 모른다.
거긴 또 다른 시간이 살고 있을 거다.
그 시간은 머리가 하얗게 샌 어떤 거인의 모습일까?
그곳엔 때 아닌 비바람이 몰아칠까?
그 비바람이 북악관의 힘찬 수직에 부딪혀 살을 에이며
방파제 속을 비집고 들어온 파도의 소리를 낼까?
산속임에도 북악관 10층엔 바다의 휘파람 소리가 살고 있었던 것일까?

❷ 김경래 교수 (정치외교·88) ♦국민대는 ‘기회의 장소’다.♦
학교를 입학했을 당시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조금씩 학교 선배 동기들이랑 친해지면서 좋은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당시 1988년도는 민주화 바람이 불던 시절이라 학교 사람들이랑 같이 집회를 나갔다가 술 한잔 기울이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즐거운 추억들도 있네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분위기 변화로 인해 지금은 바뀐 것들이 많지만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네요. 국민대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소임을 꼭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김진실 기자
박윤정 기자
오연주 기자
오현경 기자
이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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