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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뛰면서 생각했다
 
기사입력 2019-05-12 23:12 기사수정 2019-05-12 23:12
   
 


눈을 뜨니 검푸르러야 할 하늘이 환하다. 지각이다. 씻고 챙기고 할 것도 없이 현관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전철역까지 전력을 다해 질주했다. 9시 수업이니까 최소 새벽 5시 반엔 일어났어야 했다. 계단을 서너 개씩 딛고 뛰어 올라가 숨을 헐떡이며 지하철에 몸을 욱여 넣었을 때 비로소 생각했다. ‘오늘도 아침 댓바람부터 열심히 뛰었구나.’
내 뜀박질이 아침으로만 마무리되면 참 좋겠다. 왕복 5시간 ‘통학러’의 고충은 하굣길에도 이어지는데 바로 통금과 막차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다. 밤 12시인 통금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학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또 전철역에서 집까지 뛰는 것이다.
결국 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집에서 느긋하게 일어나 여유롭게 준비하고 걷는 상쾌함이란! 따듯한 햇살, 차분한 마음가짐, 그래,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보자.
문제는 빨리 찾아왔다. 처음 원룸으로 향하던 밤에 나는 또 걷지 못하고 뛰고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아까 잠깐 기삿거리를 찾다가 읽은 원룸촌 범죄 기사 때문일까? 부산에서 며칠 전 한 여대생이 도서관에서 밤까지 공부를 하다가 골목길에서 변을 당했다던데, 그 학생이 집에 가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피할 순 없었나?
뚜렷하게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와 몸과 마음이 같이 뛰었다. 통학길에 전철로 몸을 간신히 실었을 때의 두근거림보다도 더 크게 느껴졌다. 뛰기 싫어서 시작한 자취인데, 더 열심히 뛰는 귀갓길이라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자취집에 가던 길, 골목 길바닥을 보니 노란색 페인트로 ‘여성안심귀갓길’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난 이렇게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워서 뛰는데.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온 신경을 동원해서 주변을 살피며 가는데. 저 ‘안심’이라는 글자는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가. 어떤 시스템이길래 안심하라는 건지 반신반의하며 검색을 해 보았다.
여성안심귀갓길 서비스 지역에는 전봇대에 SOS 벨이 설치되어 있고 CCTV가 더 촘촘히 설치되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거 또 말만 번지르르 한 거 아니야? 내 집 앞을 둘러보니 아니었다. 눈높이엔 비상시에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알릴 수 있는 형광 표지판이, 코너길엔 뒤를 확인할 수 있는 반사 거울이 붙어있었다. SOS벨이 설치된 전봇대와 CCTV의 위치를 익혀두니 마음이 생각보다 많이 안정되었다.
내가 자취집까지 뛰고 있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안다. 이러한 서비스가 귀갓길 공포를 싹 가시게 하며 밤공기를 느긋하게 즐길 여유를 준다는 말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밤 골목길에서 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불만을 증폭시키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내 동네는 어둡나, 저 반사 거울은 하필 저기에 놓여 있어서 나를 놀라게 하나’처럼 말이다. 매일 오가는 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뛰면서도 내가 한 행동엔 주변을 살피거나 고치려는 노력이 없었음을 알았다.
며칠 전부터 집 앞 가로등이 껌뻑껌뻑 꺼져간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오늘은 집 앞 가로등을 바꿔 달라고 구청에 민원을 넣어보아야겠다. 언제 저 가로등을 LED 불빛으로 환하게 밝혀 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우선 해 보려는 마음이 중요하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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