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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화]1980년대, 열정과 낭만이 가득했던 시대
 
기사입력 2019-05-26 15:54 기사수정 2019-05-27 10:08
   
 
요즘 'Z세대'가 겪고 있는 큰 문제들 중 하나는 바로 ‘세대 간 갈등’이다. 특히 ‘86세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 크다. ‘단군 이래 최대 꿀빨러(노력하지 않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86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경제 호황기에 태어났고, 취직이 어렵지 않았으며, 대학 등록금도 쌌다. 그래서 여유와 낭만을 즐기며 20대를 보낸 ‘86세대’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겠냐는 것이다.
‘86세대’에게 언제나 여유와 낭만만이 가득했을까. 오히려 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억압받았고 긴 시간 독재로 고통받았다. 그들의 20대는 민주화 운동으로 뜨거웠던 격동의 시절이었고 군부독재에 저항하여 사회를 변화시킨 시간이었다. 민주화의 주축으로서 그들이 어떻게 사회를 변혁했고, 어떤 일들이 자유에 대한 그들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하는 것이 ‘86세대’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끝나지 않은 독재’, 12.12 사태
1979년 박정희 피격사건 이후 국민들은 민주 정부를 열망했다. 12.12 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육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의 멤버 전두환이 주도하여 일으킨 군사 쿠데타이며, 제5공화국의 실질적인 시작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하나회를 이끌며 강력한 힘을 행세하고 있었다. 이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가 하나회 세력을 축출하려 하자 전두환은 12월 12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기습적으로 체포하고 군부를 장악한다.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은 이후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최고의 권력에 올랐다. 독재가 끝났지만 다시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신군부는 물러가라’ 서울의 봄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사건은 대학가가 개학을 맞이한 3월에서야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1980년 4월부터 이를 규탄하는 집회가 끊이지 않았다. 5월 14일에는 서울 지역 27개의 대학교 총학생회는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가 시위를 시작했다. 서울역 인근에 서울 시내 30개 대학교의 대학생 10만 명이 모여 ‘계엄철폐’를 외치며 민주화 일정 제시를 요구했다. 진압군 병력 또한 시위 현장에 있었다. 이 같은 대치 상황은 지방 주요 도시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역 광장 앞에 모인 학생들은 신군부와 최규하 과도정부에 대해 대규모 성토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공수부대가 투입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충돌이 벌어질 경우, 대규모의 유혈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해 해산하게 된다. 그 후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를 통하여 사실상 정권을 장악하고, 야당 정치인들과 시위 주모자들을 체포했다.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5.18 민주화운동
서울의 봄은 광주에도 민주화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서울의 시위 소식을 들은 광주 지역의 대학생들도 5월 14일부터 시위를 시작했다. 이후 3일 동안 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광주 시내 행진을 주도했다. 3일간의 집회 기간 동안 경찰과의 충돌없이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시위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강조했으며 만약 정부가 민주화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거리에 나와 투쟁할 것이라고 말하며 시위를 마쳤다. 하지만 17일 계엄군이 광주로 내려오면서 상황이 악화됐고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다. 다음날 학생들과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칼에 무자비하게 희생됐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6월 민주항쟁
전두환 정권은 무자비하게 민주화 세력들을 탄압했다. 이 와중에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다. 학생 운동을 하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 박종철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다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5공 정권은 이 사건을 무마하려 했으나 결국 언론에 의해 진상이 폭로됐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은 시위를 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때 시위에는 이전과 달리 학생 운동을 하지 않았던 일반 학생들의 참여도 크게 늘었다. 이렇게 시위가 계속되던 중, 전투경찰이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일이 있었다. 진압 도중 일부 전투경찰이 시위대를 겨냥해 최루탄을 쐈고, 당시 시위에 가담했던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범국민적 민주화 시위가 확산됐다. 그러나 전두환은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4.13 호헌조치를 단행한다. 이로써 모든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를 중단시켰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6.29 선언
4.13 호헌조치가 참아왔던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6월 민주항쟁을 통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극에 달하자 노태우 후보는 시국 수습을 위해 6.29 선언을 발표했다. 이로써 대통령 직선제로 헌법이 개정되었고, 국민 직선제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첫걸음이었다. 이후에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제일선에는 ‘86세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80년대는 정치적으로 격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음에도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풍요로웠다. 당시 청년들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예술로 승화시켰고, 그 문화적 영향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Z세대’들은 ‘86세대’들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그들이 향유했던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요즘에는 80년대 문화를 ‘레트로’, 더 나아가 ‘뉴트로’로써 소비하며 향유한다.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나 이문세의 <붉은 노을>과 같이 당시 유행했던 음악들이 리메이크되고, ‘잔나비’와 같이 80년대 음악 스타일을 내세우는 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또한 <응답하라 1988>, <써니>처럼 그들의 청춘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에 울고 웃는다.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80년대. 80년대 문화에 대해 알아본다.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탄생
80년대에는 젊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성을 표출하였고, 그런 개성을 담은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생기면서 대학생들이 개성과 열정을 발산하고 이에 열광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가요제에서 수상을 하면 가요계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사연, 배철수, 신해철, 이선희 등의 스타를 배출했고, 이러한 가요제는 대중가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요제 수상곡이었던 <그대에게>, <귀로>, , <나 어떡해>, <담다디> 등은 아직까지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형 발라드 음악의 선구자 유재하의 등장
‘유재하’의 등장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한양대 음대생이었던 유재하는 1집 ‘사랑하기 때문에’로 데뷔하자마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1집 앨범은 ‘발라드’라는 장르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유재하는 지금까지도 한국 발라드가 ‘유재하의 모방’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발라드 싱어송라이터들이 존경하는 대표적인 음악인으로 꼽힌다. 그의 기일마다 추모콘서트를 열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의 아이돌, 소방차의 등장
소방차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소했던 퍼포먼스와 댄스를 메인으로 한 보이 밴드이다. 소방차는 한국 가요계 최초의 아이돌 그룹으로 평가받으며 가요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쉬운 멜로디와 사랑에 대한 현실적이면서 솔직한 노랫말, 아크로바틱을 기반으로 하는 화려한 안무는 훗날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R.ef부터 동방신기, 방탄소년단에까지 영향을 끼치며 아이돌 그룹의 시초가 됐다.


락의 주류화
80년대에는 비주류였던 ‘락’ 장르가 점차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락밴드 들국화의 1집 <행진>은 한국 100대 명반 1위로 평가받는다. 락의 ‘저항정신’은 80년대 민주화 열기와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져 당시 20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곡인 <그것만이 내 세상>은 지금까지 리메이크될 정도로 대중음악에 끼친 영향도 막강하다. 시나위는 ‘락’을 대중화시킨 대표적인 밴드로, ‘락’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헤비메탈’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당시 임재범, 서태지가 시나위로 활동했는데, 80년대 이후 한 사람은 국민가수, 한 사람은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부활과 같이 대중성을 가미한 락밴드들이 등장했고 현재까지도 락 장르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출범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만큼 스포츠 붐이 일어났던 때가 없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3년 프로축구 출범, 88년 서울 올림픽 등 온 국민이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였다. 프로야구는 당시 지역 연고별로 6팀이 참가했다. 이전에 이미 실업야구가 존재했기 때문에 프로야구는 리그 첫해부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프로축구는 전두환 대통령이 축구광이었다는 점이 주요한 출범 배경이 됐다. 프로축구는 초반에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고 90년대 이후에 들어 점차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프로스포츠의 출범은 어느 정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으나, 현재 프로스포츠는 국민들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남녀노소가 즐기는 <전국노래자랑>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는 최장수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도 80년대에 시작됐다. 1980년 11월 9일 이래 40년 가까이 꾸준히 방송되고 있으며, 우리나라 방송 역사상 최초로 단일 방송 프로그램 30년 방송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여기에 타 음악 프로그램에 비해 시청자의 충성도가 압도적으로 높아, 현재까지도 음악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전국노래자랑>의 오프닝 멜로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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