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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독자칼럼]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기사입력 2020-01-02 15:20 기사수정 2020-01-02 15:20
   
 


“김일성 죽었을 때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요?”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진솔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땐 김일성이 죽었을 때 어디서 뭐하고 있었느냐고 묻는다고 말한다. 나와 상대방 모두가 기억하는 날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면 가까운 느낌이 든다고. 1992년의 그날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그렇게 시공간을 공유하며 친해진다. 그리고 2002년의 그날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2002 월드컵 때 기억나?’라고.
파편화된 우리들은 같은 시점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그러나 ‘그때’를 기억 못 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시점을 제시해야 한다. 2019년을 지나 2020년이 된 현재의 대학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더 이상 2002 월드컵이 구성원 모두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단어가 아니게 된 순간 나는 시간의 흐름을 생각했다.
대학에 있은 지 5년째가 되면서 무엇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조지 오웰이 예언했던 ‘빅브라더’의 세계도,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해질 거라는 유토피아적 예측도 모두 맞지 않았다. 거시적으로 보면 시대가 격변하였지만 지내고 있는 하루하루를 생각하면 꼭 그러하지도 않다. 하루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대부분은 변화에 적응하면서, 더러는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또 다른 내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게 ‘우리들’이 만들어낸 세상이기에 때론 그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다. 2019년 한해에도 정말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혐오 범죄를 당했으며, 전쟁에 의해, 체제에 의해 희생당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교과서적인 말은 허공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사람과의 관계는 온라인 네트워크 속의 팔로우 관계로 좌우되는 덧없는 연결망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감성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는지 모르겠다. 더러는 과거를 미화하여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발 딛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제시해 놓은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자유와 평등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앞날을 응원하며. 세상에 적응하면서도 변화를 모색하고 성찰해야 한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렇기에 나는 이번 2020년과 더 나아간 미래를 긍정한다. 어찌 되었건 호주제는 폐지됐으며 2019년에는 드디어 장애인들이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듯이.
김수영은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나는 분개할 일이 작은 일밖에 없는 세상을 꿈꾼다. 기름덩어리 밖에 나오지 않은 갈비와 내 머리를 망친 ‘이발장이’ 말고는 분개할 일이 없는 세상. 2020년 한해가 그런 도약의 발판이 되어줄 해가 되길 기도한다. 끝으로 김영민 교수가 쓴 글 ‘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의 한 구절을 언급하며 마무리하겠다.
“따라서 나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이를테면 ‘왜 만화 연재가 늦어지는 거지’, ‘왜 디저트가 맛이 없는 거지’라고 근심하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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