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기사제휴
 
 
 
  [사회시사]못다한 이야기 기지촌, 그곳에 인권은 없었다
 
기사입력 2010-05-10 11:47 기사수정 2010-05-12 10:03
   
 
지난 1일, 의정부에 위치해 있는 ‘빼벌 마을’을 찾았다. 미군기지 후문을 중심으로 촌락을 이룬 이 마을은 밝게 페인트칠한 화려한 건물은 찾아볼 수 없는 영락없는 80년대의 동네였다. 한산하고 조용한 마을의 문들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오후 5시, 기지촌에 있는 클럽들이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클럽에서는 영업을 준비하는 외국인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자는 과거 이곳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현재는 어떠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편집자 글>



현재 기지촌은 이곳 의정부를 제외한 평택, 동두천, 파주, 송탄, 군산, 이태원과 같은 곳에도 자리하고 있다. 기지촌이란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비스업 위주의 군사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신용산, 나남, 진해 등 일본군 주둔지가 형성되면서부터 기지촌이 생겨났다. 6·25전쟁 이후 파주와 포천 등을 중심으로 한 서부 휴전선 남쪽의 주요 미군기지에 한국 주둔 미군을 상대로 한 군납업자, 매춘부, 상인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모여 기지촌을 형성했고 번창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기지촌은 미군기지가 통합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지만 성매매가 빈번한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

1945년 이전의 기지촌 성매매는 일본 군대 위안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945년부터 1950년 초반에 미군들이 서울로 진격하면서 인천 부평에 처음으로 정착했다. 당시 부평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대규모 창고는 인천항에서 하역돼 운반되는 미군물자의 수송본부가 됐다. 부평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들 군인을 상대로 하는 여성들이 몰려와 최초의 미군 기지촌을 형성했다. 기지촌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다. 당시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의 상당수는 전쟁 중에 남편을 잃거나 가족과 헤어진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뒤로한 채 가사노동은 물론 자녀양육, 노부모 부양 같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책임져야 했다. 이들은 농업과 어업, 영세 상업에 종사했으며 성매매에도 나섰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가난에 의해 내몰려진 젊은 한국 여성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선택하기로 했다. 1995년부터는 동유럽과 동남아시아의 많은 여성들이 무용가와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해왔다. 그때부터 기지촌에 외국인 여성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필리핀과 러시아의 여성들이 한국에 대거 들어오면서 기지촌에는 한국인 성매매 여성을 지칭하는 ‘양공주’ 뿐만 아니라 ‘주스걸’이라 불리는 외국인 이주여성들도 등장한다.

‘기지촌 여성들’의 오늘

이라크전쟁으로 주한미군이 빠져나가기 시작한 2003년 이후, 기지촌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로 미군을 대상으로 하던 기지촌의 ‘성 산업’은 미군의 감소로 인해 클럽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대다수가 이직 또는 실직하면서 침체됐다. 한국여성들이 떠나간 자리는 인건비가 싼 필리핀과 러시아 등 외국 여성들로 대체됐다.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은 필리핀과 한국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기획사와 연예인으로 활동하겠다는 계약을 맺고 예술흥행사증을 통해서 연예인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그러나 외국인 여성 대부분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클럽과 바에서 ‘주스걸’로 일한다. 기지촌에서는 여성의 몸이 하나의 상품으로 여겨진다.

기지촌에서 일하는 여성 중 일부는 미군과 결혼을 하기도 하나 결혼하면 클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녀들의 희망은 단지 ‘가족수당’을 받기 위해 결혼한 미군들에 의해 무너지기도 했다. 기지촌 여성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단체 ‘두레방’의 익명을 요구한 한 활동가는 “미군들은 가족수당을 받기 위해 여성들과 결혼을 한다”며 “헤어져도 가족수당으로 나오는 돈 때문에 이혼은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지촌에서는 혼혈아동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미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아버지의 국적을 획득하지 못하고 모계의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아예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국적이 없는 아동들도 있다. 최근에는 외국인 여성과 미군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들도 급증하고 있다. ‘햇살사회복지회’가 기지촌 여성노인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는 대부분의 기지촌 여성들이 혼혈아동에 대한 차별과 냉대 등으로 인해 결국 대부분의 혼혈아동들을 해외로 입양시켰다는 결과가 드러났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은 어디로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었다. 50년 전의 기지촌에서 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은 국가를 ‘거대한 포주’라고 칭했다. 과거의 한국정부는 외화벌이를 위해 혹은 미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지촌 여성을 관리했다. 정부는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검사를 하고 영어를 가르쳤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산업의 역군’, ‘대한의 딸’이라는 명칭을 붙여주기까지 했다. 그들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일을 해야 했고 미군과 포주의 폭행으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 되어도 클럽에 나가야 했다. 한국정부는 기지촌의 성매매를 외교의 이름으로,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용하며 힘없는 여성들을 착취하고 여성의 인권을 짓밟았다.

1992년에 벌어진 ‘윤금이 사건’(기지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여성이 자신의 방안에서 미군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되었다)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윤금이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 측과 한국 경찰은 사체 부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시체를 화장했고 피해보상금 60만원으로 무마하려고 했다. 이러한 허술한 조사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고 사회적으로 ‘반미’ 감정을 높였다. 미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 된 ‘기지촌 여성’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한 정부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기지촌의 ‘주스걸’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두레방의 활동가는 “먹고 살기 위해 한국으로 온 외국인 여성들은 기획사와의 계약 때문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며 “도망을 나와도 한국정부는 불법체류자인 여성들을 귀국시켜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지촌의 여성들’은 어떤 삶은 살고 있는가?

두레방의 활동가는 “과거 성매매를 했던 기지촌 할머니들은 기지촌을 떠나지 못하고 사회와 고립되어 외로운 여생을 살아간다”며 “가까운 시장에도 혼자 가기를 두려워한다. 사회가 자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평생을 기지촌에서 살아온 고령의 한국여성들은 사회의 무관심과 가족들의 외면, 오랜 세월에 걸친 성적인 폭행에 심리적,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활동가는 “기지촌 할머니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단칸방에서 질병과 고독에 고통 받고 있다”며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좋지 않다. 이로 인해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두레방에서는 그들의 의료비 문제를 해결해주지만 사회와 국가적인 경제적 후원이 적어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국가는 과거의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했던’ 그녀들을 외면하고 있다. 현‘성매매특별법(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의 보호와 자립의 지원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에서도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한 줄의 지원조항도 없다. 몇 년 전에는 광운대 캠퍼스 설립이 확정되면서 의정부 토지세가 껑충 뛰어 방값도 높아졌다. 대부분 월세로 살고 있는 기지촌 할머니들의 거주지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기지촌 클럽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들은 한 달 버는 돈의 대부분은 계약서에 의해 클럽 매니저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그들에게 남는 월급은 한 달 3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방세를 절약하기 위해 그녀들은 여러 명이 모여서 몇 평 안 되는 단칸방에서 함께 산다. 가끔은 클럽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여성들도 있다. 그녀들은 한국 정부의 도움을 바라지만 정작 정부는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두레방의 활동가는 “정부가 연예인 비자로 들어온 그들이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현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다”며 “미군 기지가 있는 곳에 기지촌은 있기 마련이고 기지촌이 있는 곳에는 그 곳을 유지하기 위한 여성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과거의 한국여성들을 지금은 외국인 여성들이 대체하고 있다. 그녀들이 없으면 기지촌 성 산업의 운영은 불가능 하다”며 “그녀들에게 기지촌은 제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말했다.

기지촌을 방문하는 동안 현대적인 아파트 건물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곳에 약속된 아름다움과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기지촌 할머니들은 기자와의 간단한 인터뷰에도 격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두레방의 활동가는 “그분들은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한다”며 “과거에 대해 언급은 그녀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 이용했던 그녀들은 현재 주거문제, 악화된 건강상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다. 한편 아직도 기지촌의 클럽에서는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성매매, 인신매매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명확한 대처 방안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는 ‘침묵’만 하고 있다.


  임홍련 기자 sammi14@kookmin.ac.kr
   
   
신문사소개 광고안내 기사제휴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