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를 만났다. 몇 주가 지났지만 친구와 대화하다 나온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구가 이렇게 큰데, 분명 개인마다 각자의 성향에 맞는 도시가 반드시 존재할 거야. 나는 그곳에서 살겠어."

건축물에서 보이는 도시의 특성
어쩌다 24년의 첫 두 달 동안 미국 라스베가스와 싱가포르에 방문했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과 본능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진 라스베가스,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고 불릴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싱가포르, 두 도시 모두 자본주의 색채가 강한 곳이었다. 무서울 만큼 광활하고 어두운 사막을 지나 도착한 라스베가스에서는 온갖 크고 화려한 것들이 나를 맞이했다. 인생의 한 방을 노리는 도박꾼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종업원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돈을 더 지불할수록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그곳은 자본주의의 정점을 찍고 있는 도시였다. 
좁은 땅에 비해 많은 인구를 극복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계획된 싱가포르는 건물들과 도로가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모두 노력한다. 아시아 1위, 세계 순위로는 10위 안에 들 정도의 명성을 가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도 자리 잡고 있어 학구열도 높은 편이며, 경쟁 및 성과주의도 심한 편에 속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도시 모두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지만 왜인지 나는 이 두 곳에서 어떠한 만족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무엇을 해도 어딘가 공허했던 것일까?


내가 살았던 싱가포르를 다시 방문했다.
사실 나는 학창시절 5년을 싱가포르에서 보냈다. 내 추억은 7시간의 비행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 사물, 장소, 공기에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그리워 싱가포르행 항공권을 끊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었다. 무척이나 그리웠던 풍경들을 다시 보게 되어 좋았다. 여전히 덥고 습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나른한 그곳.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들, 그 속에서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했다. 사실 볼 건 다 볼 만큼 살았기에 그저 사람들과 장소들을 만나고, 좋아했던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중 마리나베이의 야경이 가장 그리웠다. 유학 생활을 하며 심적으로 힘들 때면 항상 달콤한 음식을 들고 마리나베이에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옛 친구와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해 질 무렵 도심의 높은 건물들, 꺼지지 않는 불빛들을 올려다보며 상념이 이어졌다. 나는 어디쯤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성과사회, 경쟁사회의 정점인 이 나라에서, 화려한 야경을 보며 나는 위만 올려다봤던 것 같다. 끝없는 곳을 바라보며 나는 행복을 무엇으로 환산하고 있었을까?

도구적 인간 말고
이런 생각이 많아질수록 나는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 맞는 도시는 어디일지 궁금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에 있든 내 행복을 찾으면 그만인데, 애초에 그 본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모르던 허무함에서 비롯된 의문인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동생은 봉사를 위해 우간다에, 나의 선생님은 보스니아에 다녀왔다. 두 사람의 여행기를 들으니 대도시 말고 소도시를 여행하고 싶어졌다. 야경 말고 다른 것이 보고 싶었다. 내가 다녀온 곳과는 전혀 다른 지역의 이야기를 들으니 갖은 생각이 들었다. 지구는 참 넓고 세상에는 참 많은 일이 있고, 야경이 참 아름답고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데 삶이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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