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역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 많다. 초등학생 시절 떡볶이를 먹던 분식집과 슬러시를 먹기 위해 줄을 섰던 문구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뛰놀던 학교 근처 놀이터. 이곳을 지날 때는 조심성이 부족해 늘 얼굴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현재의 그곳들은 내 기억 속 풍경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딴판이 됐다. 오랜만에 만난 분식집은 문을 닫아 터만 남아있었고, 아직 남아있던 문구점엔 한두 명의 아이들만 있었다. 그저 슬러시 기계의 모터소리가 초등학교 앞 길거리의 정적을 채우고 있었다. 저출생이라는 사회문제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참담한 순간이었다.


계속해서 아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신입생을 받지 못해 전국 157개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리지 못했고, 합계출산율은 2023년 4분기 기준 0.65명으로 멈출 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내가 태어났던 해와 비교해 보니 두 배가 넘게 감소했다. 모교 앞에서 느끼던 한산함이 그저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단순하게 아이들이 없어져 아쉬운 것이 아니다. 저출생은 곧 인구구조 자체를 바꿔 휴전 중인 우리나라에 근본적인 안보력 저하를 일으키고 사회적 안전망에 균열을 일으키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하게 만드는 중차대한 문제다.


과연 정치권도 저출생이 사회문제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 여당과 야당은 모두 저출생은 곧 국가위기라는 명제에 공감하며 제각각 저출생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은 3월 21일 기준 34개인데, 이 중 8개의 법안만이 처리됐다. 처리되지 못한 법안은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발의된 지 3년이 넘은 법안도 존재했다. 또한 매번 천문학적 비용을 저출생 대책에 쏟아부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OECD 국가 평균보다 저조한 수준이다. 심지어 20대에 아이를 셋 낳으면 병역을 면제하자는 황당한 정책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일도 있었다.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과연 정치권이 이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직면한지도 모른 채 그저 서로를 넘어뜨리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대체 무엇인가. 제도를 기반으로 한 사회의 전반적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예컨대 남성의 육아휴직률은 22년 기준 6.8%로 매우 저조하다. 이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적 풍토 때문일 것이다. 해당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과 함께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녀의 양육비 때문에 출산을 부담스러워 하는 부부도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확한 예산 집행을 통해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멈출 줄 모르고 떨어지는 합계출산율 지표는 이제 90년대생 앞에 놓여있다. 이들은 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직전의 세대로, 통계청에서 산출한 모의 평균 출산 연령인 33.5세 즈음의 연령대다. 90년대생을 놓치면 저출생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선 그들에게 무작정 저출생의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논조의 글을 써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종용해서는 안 된다. 먼저 국가가 나서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국민들에게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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